2016/6/12
지금 내가 죽으면 분명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기타노 다케시라는 인간이 살았구나’하는 사실은, 땅에 떨어지는 비 한 방울이 곧이어 떨어지는 빗방울에 간단히 지워져버리는 것처럼 이내 잊히게 마련이다.(14p)
간단히 말해서 연예인을 지망하는 사람이 1,000명 있다고 치자. 그중 몇 명이나 연예활동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될까? 고작 한 명 있을까 말까다. 나머지 999명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없다.(66p)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남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만약 내가 전혀 팔리지 않는 연예인인데도 아야노코지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뜨지 않았다면 만나서 입으로는 “잘됐다” 정도의 말은 하겠지만, 내심 ‘웃기고 있네. 어째서 나는 못 뜨고 네가 뜨는 거야’ 하고 생각했을 게 뻔하다.(99p)
‘옛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는 지금 왜 날 도와주지 않는 거야’ 하고 생각한다면, 그런 건 처음부터 우정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로 곤란할 때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우정이다.
요컨대 우정은 내가 저쪽에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지, 저쪽에서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우정이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다.
애초에 우정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다. 손익으로 따지자면 우정은 손해만 볼 뿐인 것.(127p)
타인에 대한 배려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점점 힘들어지는 부분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걸핏하면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랑은 한 푼도 득이 되지 않고, 그 자리의 분위기만 흐릴 뿐이다. 남의 자랑을 들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142~143p)
용서할 수 없는 타입은 함께 술을 마실 때 “다케시 씨는 참 좋은 사람이군요”라고 말하는 여자다.
나는 나쁜 사람이나 못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유혹했는데, 그렇게 말해버리면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 계속 좋은 사람인 척하고 있을 수밖에.
헤어질 무렵에 여자는 확인 사살을 한다.
“나중에 또 상담해주세요.”(149p)
여러 종류의 단맛을 모두 “단 것 같아요”라는 말로 정리해버리고, 세세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끝까지 파고들어 자세히 생각하지 않고, 적당히 대충 때우고 넘어간다고 할까. 요즘 세상에는 모호한 것들이 만연하고 있다.
(...)
모호한 표현으로 상대에게 공감을 호소하려는 걸까? ‘·····같은 느낌’이라고 써두면, 무슨 의미인지는 상대가 생각해줄 테니 대립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표현은 글로 쓸 때 뿐 아니라 말할 때도 예사로 사용되고 있다.
(...)
기본적으로 문학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예술이라는 것은 그 ‘·····같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고생이 ‘빨간 석양 같은’이라고 한마디로 끝내는 석양빛을 제대로 나타내기 위해서 화가는 오랫동안 고민한다. 자신이 경험한 ‘·····같은’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뭐든 ‘·····같은’이라고 간단하게 해결하는 모호한 감각으로는, 제대로 된 예술을 탄생시킬 수 없다.(170p)
ㅡ 기타노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中, 북스코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