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5

 

식료품점에 가서 사온 오이를 식초 통에 넣는다면, 오이가 “안 돼, 나는 단맛을 지키고 싶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헛된 외침이다. 그 통은 오이를 피클로 만들 것이다. 식초 통에서는 오이로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우리가 전쟁이라는 나쁜 통을 지니고 있으며, 그 속에 이 교도소라는 나쁜 통을 집어넣으면,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선량했던 사람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95p)

 

이 모든 이야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방치의 악’이다. 나는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추어왔지만, 내 연구와 앞으로의 저술에서 더욱 초점을 맞추고 싶은 두 중요한 집단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지켜보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떠한가? 아부그라이브에는 의사, 간호사, 기술자도 있었다. 두 군인이 죄수들을 피라미드처럼 쌓아올리고 찍은 사진을 보면 주위에 둘러서서 지켜보는 사람이 12명이나 되었다. 이런 짓을 지켜보면서 “이건 잘못된 일이야! 당장 그만둬! 너무 끔찍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그 끔찍한 일을 용인하는 침묵하는 다수에 속한다. 내가 뉴욕에서 택시를 탔는데 운전사가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차별적인 농담을 꺼낸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그의 말을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그는 승객이 그런 농담을 좋아한다고 짐작하고서 계속 떠들어댈 것이다. 그는 내 침묵을 자신의 인종차별주의를 승인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방치의 악은 그 교도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만이 아니라, 악을 보면서도 반대하지 않아서 그것이 계속되도록 허용하는 사회 전체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세계적인 석학들로 이루어진 엣지 재단에서 나온 첫 번째 책이다. 스티븐 핑커를 위시한 각 분야의 논쟁적인 학자들의 참신한 의견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위의 인용은 그 중 스탠포드 감옥 실험(루시퍼 이펙트라는 책과 여러차례 영화화도 됨)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 한 부분이다. 뒷부분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부부 중 한 명이 자식을 학대하는 것에 대해 다른 한 쪽이 적극적으로 안 된다고 막지 않는 것은 직접적으로 아동을 학대하지 않았어도 학대를 조장했고 오히려 그 또는 그녀도 가해자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잘못된 사안에 대해 “이건 잘못된 일이야! 당장 그만둬! 너무 끔찍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귀찮고 성가실뿐더러 내가 원하는 수준의 응징이 가해지지 않아도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나마 향해 가고 있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행동하는 누군가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초면에 반말하는 택시기사를 만나면 얘기해봐야 들어먹지 않을 면전에서 싸우지 말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신고하면 된다. 밤늦은 시간에 술 처먹고 주택가에서 깽판 치는 것을 봐도 마찬가지로 전화기를 들면 된다.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얼마나 산뜻한가. 이런 일들을 귀찮다고 참고 넘어가니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만연하고, 상식 있는 사람들이 비상식적인 대우를 받는다.

 

 

ㅡ 스티븐 핑커 외, <마음의 과학> 中,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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