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11
한 인간의 수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종의 모순적이고도 다채로운 특성을 드러내는 책이다. 근자의 독서 중 가장 압도적인 책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쉼표로 이어지는 만연체의 장광설을 보노라면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한 번 읽어서 이해가 안 되면 나의 부족한 문해 능력을 탓하며 문장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찬찬히 읽어보기도 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과 사유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인간의 찌질하면서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 결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불가해한 모습을 묘사하는 모습을 보면 작가의 인간에 대한 수준 높은 통찰과 그 깊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이번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포함하여 ‘죄와 벌’까지 총 2권을 읽었다. 5대 장편(악령, 백치, 미성년, 카라마조프가네 형제들, 죄와 벌) 중 죄와 벌을 제외한 다른 작품은 언제쯤이면 읽을 수 있을까? 솔직히 카라마조프가네 형제들이 가장 읽고 싶은 마음이 커서 욕심을 내서 샀으나 아직 못 읽었다. 앞부분을 조금 읽어봤는데 띄엄띄엄 읽으면 제대로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한 번에 집중해서 읽어보려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
어쨌든 모임을 계기로 사놓고 안 읽은 책을 남들에게 소개하며 나도 함께 읽을 수 있는 보람찬 기회였다.
하기는 근본 이유 같은 건 따지지 말고 잠시 의식을 물리치고 맹목적으로 자기 감정에 이끌려가는 것도 좋다. 팔짱을 끼고 멍청히 앉아 있지 않기 위해서, 증오하든 사랑하든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늦어도 사흘째에는 자기 자신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뻔히 알면서 자기 자신을 기만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나중에 남는 것은 비누 거품과 타성뿐이다.(29p)
인간이 추악한 짓을 하는 것은 오직 자기의 참 이익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은 대체 누구인가? 이들의 생각에 의하면 인간이란 그 지성을 일깨워주고 자기의 진짜 이익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눈뜨게 해주기만 하면, 이내 더러운 행위를 집어치우고 선량 결백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계몽된 지성을 지니게 되고 자기의 진짜 이익을 알게 되면, 선행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기 이익에 반대되는 짓을 일부러 할 리는 만무하므로 필연적으로 선을 행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식의 논리일 것이다. 아아, 이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가! 순진무구한 젖먹이의 꿈이랄밖에!(31~32p)
너무 길어 전부 옮겨 적는 것은 의미가 없어 뒷부분은 생략 했으나 이 부분 뒤로 제시하는 주장은 1부의 백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여기서 당신들에게 묻거니와, 이런 기묘한 성질을 타고난 동물인 인간으로부터 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한 번 시험삼아 지상의 온갖 행복을 인간의 머리 위에다가 한꺼번에 퍼부어, 행복 속에 풍덩 가라앉아버리게 하여, 그 행복의 표면에 물거품 같은 것이 꾸럭꾸럭 떠오르도록 해보라. 아니면, 인간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경제적 만족을 주어, 실컷 잠이나 자고 꿀떡이나 먹고 세계사의 영속이나 염려하는 따위 일밖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처지에 놓아보라. 그래도 인간은, 오직 배은망덕의 습성 때문에, 더러운 고집 때문에,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야 말 것이다. 꿀떡이 주는 행복조차도 희생할 각오로 자기를 파멸시키는 비경제적이고 바보스런 넌센스를 기어이 원할 것이다. 그것도 다만 이 분별에 찬 질서정연한 세계에 파멸과 환상의 분자를 혼합시키고 싶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공상과 비천하기 짝이 없는 욕망을 언제까지나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게 인간인 것이다. 결국 그것은 인간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 피아노의 건반은 아니라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데 지나지 않는다.(46p)
도대체 당신들은 무슨 이유에서 그토록 확고하게, 그토록 자랑스럽게, 오직 정상적이며 긍정적인 것만이, 이를테면 오직 무사안일만이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확신하고 있는가? 정말로 이성은 이해의 판별을 절대 그르치는 일이 없을까? 실은 인간이 사랑하는 건 무사안일뿐만은 아닌지 모르잖는가. 인간은 고통이란 것도 그만큼은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인간은 미칠 듯이 고통을 사랑하는 수가 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선 새삼스레 세계사를 들춰볼 필요도 없다. 만약에 당신들이 인간이고 얼마만큼이라도 생활한 경험이 있다면, 자기 가슴에 물어보라. 내 의견으로는 오직 무사안일만을 사랑한다는 건 어쩐지 추한 것 같다. 좋건 나쁘건 뭔가 파괴한다는 건 때로는 몹시 유쾌한 일이다. 내가 여기서 특별히 고통의 편을 드는 것도 아니고 무사안일을 변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자기의 변덕은 물론이요, 그 변덕을 필요할 때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까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51~52p)
ㅡ 도스토옙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中, 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