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3
갈보 집은 우울해요. 뭔가를 집어넣으러 가는 곳은 다 그렇죠. 은행, 우편함, 무덤, 자동판매기.(33p)
호머는 파리들의 편이었다. 이따금씩 허공에서 맴돌던 파리 한 마리가 너무 멀리 돌아 선인장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호머는 마음속으로 그 파리가 그대로 날아가거나 되돌아가기를 빌었다. 파리가 선인장에 내려앉으면 도마뱀이 살금살금 다가갔고, 호머는 녀석이 파리를 잡아먹을 때까지 숨을 멈춘 채 지켜보면서 제발 무슨 일이 일어나서 파리가 위험을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렇게 파리가 무사히 도망치기를 바라면서도 자기가 개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도마뱀은 이따금씩 거리 조절에 실패했고 그때마다 호머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71~72p)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일부만을 욕망에 바친다. 머리나 가슴만 훨훨 타오르는데 그나마도 완전히 몰두하는 건 아니다. 더욱더 운이 좋은 사람들은 백열등의 필라멘트와 같아서 맹렬히 타오르지만 조금도 닳지 않는다.(95~96p)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만이 눈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울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러나 호머처럼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들, 그저 영구불변의 번민이 전부인 사람들은 울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울지 않을 수도 없다.(98p)
여기서 누군가를 체포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일단 범인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행동하다가 모퉁이를 돌아간 뒤에야 비로소 경찰봉으로 마구 두들겨 팼다. 범인을 점잖게 대하는 것은 군중 속에 있을 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243p)
토드는 그 사람들이 군중에 합류하자마자 변모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줄을 서기 전까지만 해도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군중의 일부가 되는 순간부터 뻔뻔스럽고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그들이 순진한 호사가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그들이 순진한 호사가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그 사람들은 잔인하고 사나웠으며 특히 중년층이나 노년층은 더욱더 심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권태와 실망 때문이었다.
그들은 책상이나 계산대, 밭이나 각양각색의 단조로운 기계 따위에 매달려 따분하고 힘겨운 노동과 함께 한평생을 보낸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으면서 언젠가 돈이 좀 넉넉해지면 여유를 얻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날이 온다. 주급 10달러 또는 15달러를 받게 되었다. 그럴 때 햇빛과 오렌지의 땅 캘리포니아가 아니면 또 어디로 가랴?
그러나 막상 이곳에 도착하면 햇빛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다. 오렌지에도, 심지어 아보카도와 패션 푸르트에도 싫증이 난다. 재미있는 일도 없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다. 여가를 즐길 만한 정신적 여건을 갖추지도 못했고 자금력도 부족하고 신체적 여건도 쾌락을 추구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고작 아이오와로 소풍이나 가려고 그토록 오랫동안 노예처럼 일했나? 뭐 또 없을까? 그들은 베니스에 가서 밀려드는 파도를 구경한다. 대부분은 바다가 없는 곳에 살던 사람들이지만 파도는 하나만 보아도 모두 본 것과 다름없다. 글렌데일의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한 번씩 비행기가 추락하기라도 하면 신문의 표현처럼 <불구덩이 속에서> 몰살당하는 승객들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는 좀처럼 추락하지 않는다.
권태는 점점 더 심해진다. 그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원한을 불태운다. 날이면 날마다 신문을 읽고 영화를 보러간다. 이 두 가지는 그들에게 폭행, 살인, 성범죄, 폭발 사고, 충돌 사고, 밀회 사건, 화재 사건, 혁명, 전쟁 따위를 가르쳐준다. 날마다 그런 정보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그들은 점점 더 약아진다. 태양도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오렌지도 그들의 지친 입맛을 자극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그들의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팽팽하게 긴장시킬 수는 없다. 그들은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했다. 죽도록 일하며 저금한 보람이 없다.(245~247p)
ㅡ 너새네이얼 웨스트, <메뚜기의 날> 中, 열린책들
갈보 집은 우울해요. 뭔가를 집어넣으러 가는 곳은 다 그렇죠. 은행, 우편함, 무덤, 자동판매기.(33p)
호머는 파리들의 편이었다. 이따금씩 허공에서 맴돌던 파리 한 마리가 너무 멀리 돌아 선인장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호머는 마음속으로 그 파리가 그대로 날아가거나 되돌아가기를 빌었다. 파리가 선인장에 내려앉으면 도마뱀이 살금살금 다가갔고, 호머는 녀석이 파리를 잡아먹을 때까지 숨을 멈춘 채 지켜보면서 제발 무슨 일이 일어나서 파리가 위험을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렇게 파리가 무사히 도망치기를 바라면서도 자기가 개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도마뱀은 이따금씩 거리 조절에 실패했고 그때마다 호머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71~72p)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일부만을 욕망에 바친다. 머리나 가슴만 훨훨 타오르는데 그나마도 완전히 몰두하는 건 아니다. 더욱더 운이 좋은 사람들은 백열등의 필라멘트와 같아서 맹렬히 타오르지만 조금도 닳지 않는다.(95~96p)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만이 눈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울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러나 호머처럼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들, 그저 영구불변의 번민이 전부인 사람들은 울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울지 않을 수도 없다.(98p)
여기서 누군가를 체포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일단 범인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행동하다가 모퉁이를 돌아간 뒤에야 비로소 경찰봉으로 마구 두들겨 팼다. 범인을 점잖게 대하는 것은 군중 속에 있을 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243p)
토드는 그 사람들이 군중에 합류하자마자 변모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줄을 서기 전까지만 해도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군중의 일부가 되는 순간부터 뻔뻔스럽고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그들이 순진한 호사가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그들이 순진한 호사가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그 사람들은 잔인하고 사나웠으며 특히 중년층이나 노년층은 더욱더 심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권태와 실망 때문이었다.
그들은 책상이나 계산대, 밭이나 각양각색의 단조로운 기계 따위에 매달려 따분하고 힘겨운 노동과 함께 한평생을 보낸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으면서 언젠가 돈이 좀 넉넉해지면 여유를 얻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날이 온다. 주급 10달러 또는 15달러를 받게 되었다. 그럴 때 햇빛과 오렌지의 땅 캘리포니아가 아니면 또 어디로 가랴?
그러나 막상 이곳에 도착하면 햇빛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다. 오렌지에도, 심지어 아보카도와 패션 푸르트에도 싫증이 난다. 재미있는 일도 없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다. 여가를 즐길 만한 정신적 여건을 갖추지도 못했고 자금력도 부족하고 신체적 여건도 쾌락을 추구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고작 아이오와로 소풍이나 가려고 그토록 오랫동안 노예처럼 일했나? 뭐 또 없을까? 그들은 베니스에 가서 밀려드는 파도를 구경한다. 대부분은 바다가 없는 곳에 살던 사람들이지만 파도는 하나만 보아도 모두 본 것과 다름없다. 글렌데일의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한 번씩 비행기가 추락하기라도 하면 신문의 표현처럼 <불구덩이 속에서> 몰살당하는 승객들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는 좀처럼 추락하지 않는다.
권태는 점점 더 심해진다. 그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원한을 불태운다. 날이면 날마다 신문을 읽고 영화를 보러간다. 이 두 가지는 그들에게 폭행, 살인, 성범죄, 폭발 사고, 충돌 사고, 밀회 사건, 화재 사건, 혁명, 전쟁 따위를 가르쳐준다. 날마다 그런 정보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그들은 점점 더 약아진다. 태양도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오렌지도 그들의 지친 입맛을 자극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그들의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팽팽하게 긴장시킬 수는 없다. 그들은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했다. 죽도록 일하며 저금한 보람이 없다.(245~247p)
ㅡ 너새네이얼 웨스트, <메뚜기의 날>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