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9

 

 

내가 온종일 물리를 공부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동의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 교육한다면 이미 뭔가 잘못된 거다. 왜냐하면 그 행복이란 당신이 정의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아이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 동물들이 그러하듯, 결국 인간에게도 교육의 목적은 아이의 독립이다. 행복한 삶을 정의하고 그것을 찾는 것은 부모, 교사, 사회의 몫이 아니라 바로 아이 자신의 몫이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기 때문이다.(69p)

 

 

만약 누군가 자신은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고 하자.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보면 할 수 없고 혼자 있을 때만 된다. 이 사람의 말이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적어도 과학적이지는 않다. 보편적으로 재현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턴의 중력이론에 따르면 지구 표면에서 모든 물체는 1초에 4.9미터 낙하한다. 이것은 지구상 모든 장소에서 어떤 사람이 하더라도 그러하다. 오늘 해봐도, 내일 해봐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뉴턴의 이론은 과학적이다. 바로 이런 속성 때문에 과학이 예측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론이 되었다고 믿는다. (..) 과학의 재현가능성에 대한 요구는 예측가능성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아무리 유명한 과학자의 이론이라도, 실험결과가 예측한 것과 다르면 그의 이론은 폐기된다.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뉴턴이지만, 빠른 속도로움직이는 물체에서 그의 이론은 잘못된 예측을 내놓는다. 특허청에서 일하는 말단 직원이라도, 그의 이론이 재현가능한 예측을 내놓는다면 그가 맞는 거다.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그래서인지 물리학자들은 권위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론이 옳다면 재현가능한 증거를 보이면 그만인 것이다. 증거가 불충분할 때는 모른다고 말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과학적인 자세이다.(126-127p)

 

 

ㅡ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공부> 中,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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