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4

 

 

 

업주들에게 간신처럼 행동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폴로니어스가 떠올랐다.

업주가 하늘을 보며 내일은 비가 내릴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그들은 맞장구를 쳤다. “영락없이 비가 올 날씨네요.” 그러나 업주가 또다시 그래도 먹구름은 아닌 걸, 비가 오지 않을 것도 같은데라고 말하면 재빨리 말을 바꿔 받아쳤다. “그렇구말구요, 나으리. 비가 오지 않구말구요.”

그러나 업주의 등뒤에서는 비꼬고 헐뜯었다. 업주가 발코니에 앉아 신문이라도 읽으면 그들은 이렇게 비꼬았다.(54p)

 

 

그는 점진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악의 문제는 모두 각자가 결정하는 것이며 전 인류가 점진적인 발전을 통해 문제의 해결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점진성이라는 것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인문학적 사상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동안에 또 다른 휴의 사상도 발전할 것이다. 농노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라는 것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해방주의 사상의 최고점에서는 옛날 몽고의 바투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게 될 것이다. 정작 그들 자신은 굶주리고 헐벗고 외부의 공격에 무기력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사회질서는 어떤 사조 속에서도 훌륭히 살아남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속박의 기술도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인들을 마구간에 재우지 않지만, 그 대신 농노제에 아주 교묘한 껍질을 씌워서 매번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념은 이념일 뿐이고, 19세기 말인 이 시기에도 가장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우려 들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위대한 사상가나 학자들이 자신의 황금 같은 시간을 이런 일에 쓴다면 인류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올 것이라며 변명할 것이다.(60-61p)

 

 

뭐니뭐니해도 가장 서러운 것은 쥐꼬리만한 임금이었다. 청부업자가 처음 일을 받고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청을 주면 그 다른 사람이 다시 레지카에게 일을 주는 식이었다. 그들 각자 20퍼센트의 마진을 가져갔다. 공사 자체가 이미 돈이 되는 것이 아니었고, 비까지 내려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일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레지카는 우리들에게 일당을 지급해야만 했다. 굶주린 도장공들은 그에게 덤벼들었고 사기꾼이니 흡혈귀니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 놈이니 하면서 욕했다.(64p)

 

 

가장 경악했던 것은, 흔히 하느님을 잊었다라고 표현하는, 정직함의 완벽한 부재였다. 하루도 거짓말하지 않고 보내는 날이 없었다. 우리에게 니스를 팔았던 상인, 청부업자, 아이들 그리고 업주들도 거짓말을 밥 먹듯 했다.(67-68p)

 

 

당신 아버지는 돈이 많은 사람이죠. 그러나 그의 말에 의하면 그도 한때는 기계공과 기름공이었어요.(73p)

 

 

그녀는 털실로 짠 소박한 옷을 입고, 두건을 두르고, 얌전한 양산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러나 코르셋으로 몸을 꼭 죄고 비싼 외제 구두를 신은 이 날씬한 아가씨는 시골여자 역할을 맡은 재능 있는 배우일 뿐이었다.(99p)

 

 

나중에 알고 보니 스테판은 남자들하고 있을 때만 그렇게 말이 없고 느림보였지, 여자들과 함께 있을 때는 사뭇 달랐다. 그는 활개치고 다니면서 쉴 새 없이 주절거렸다.(120p)

 

 

아내를 남편의 보조자라고 하죠. 왜 내게 보조자가 필요하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데요. 아내란 이러쿵저러쿵 재잘대기보다는 다정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라야 해요. 좋은 대화가 없는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123p)

 

 

그녀는 화를 냈고 날이 갈수록 그들에 대한 증오를 쌓아갔지만, 나는 점차 그들에게 익숙해졌고 그들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예민하고 짜증을 잘 냈으나 대부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억눌린 상상을 했고, 무식하고 빈약하고 흐릿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이 회색 땅과 회색 인생과 검은 빵에 대해 언제나 똑같은 생각만을 했다. 그들은 교활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땅속에 멍청한 머리만은 처박고 다 숨었다고 생각하는 새와 같았다. 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들은 20루블을 받고 풀을 베지는 않아도 반 통의 보드카에는 얼씨구나 하고 나설 사람들이었다. 20루블로 보드카 네 통은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들은 추잡한 술주정뱅이에 어리석기 그지없었고, 늘 서로를 속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람은 무언가 건강하고 단단한 것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고집스런 짐승 같아 보여도, 그들이 아무리 보드카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도,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점점 끌리게 될 것이다. 마샤와 블라고보 같은 사람들에게는 없는 무언가 부드럽고 중요한 것이 그들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진리이며, 민중의 구원은 바로 이 진리 안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보다도 정의를 사랑했다. 나는 아내에게 유리에 있는 먼지 자국은 보면서 유리는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아무 말이 없거나 스테판처럼 울룰룰루라고 흥얼거렸다. 이 착하고 영리한 여자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블라고보에게 농부들의 술버릇과 속임수를 성토할 때면, 나는 그녀의 건망증이 놀랍기만 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술을 많이 마시며, 두베취냐를 사들인 돈도 수차례의 파렴치한 사기를 통해 모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 사실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을 수 있을까?(124-125p)

 

 

우리의 만남과 결혼생활은 이 재기발랄한 여성의 삶에 앞으로도 여러 번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은 모두 그녀의 손 안에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너무나 쉽게 가졌다. 갖가지 사상과 최신의 지성 사조까지 그 모든 것들은 그녀의 삶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주는 즐거움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하나의 즐거움에서 또 다른 즐거움으로 안내하는 마부에 불과했고, 더 이상 그녀에게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날개를 퍼덕이고 날아가버리면 나는 홀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136p)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나는 날이 밝아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마샤는 천장에 눈길을 고정한 채 누워 있었다. 그녀는 마치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어떻게 자기처럼 똑똑하고 교양 있고 말쑥한 숙녀가 이런 촌구석의 거칠고 볼품없는 사람들 속에 빠져버렸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에게 빠져 1년 반 이상이나 그의 아내로 살았는지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나도 모이세이도 체프라코프도 아무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해 지르는 그의 비명소리는 나와 우리의 결혼, 우리의 생활 그리고 이 가을의 질퍽한 진창과 어우러져 그녀의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였다. 한숨을 내쉬거나 자세를 바꿔 누울 때의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어서 빨리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아침이 되자 마샤는 떠났다.(138-139p)

 

 

 

 

안톤 체호프, <산다는 것은> ,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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