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28
서문이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해서 본문이 사족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서문이 좋았다.
당대의 미술계를 구성하는 작가,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 옥션 전문가를 저자의 전공인 사회학 연구방법을 통해 얕게 들여다보는 책이다.
기대가 크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도 책이 별 내용이 없었다. 저자가 생생한 미술 현장을 찾아다닌 4년간의 리서치의 결과물이자 무려 250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압축하고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점이 문제다. 다 읽은 지금 시점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이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관찰법과 인터뷰라는 방법 자체가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질적인 연구방법인데 단순히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외양을 묘사하고(배어는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를 닮았다. 매력적인 은발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낀, 정말이지 ’쿨‘한 뉴욕커다.) 그들이 입 밖으로 낸 한두 마디를 따서 글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서문만 읽어도 충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읽는 것만이 진정한 독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강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왜 미술시장이 지난 10년간 급성장했는지 묻고 싶다면, 다음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 사람들이 미술에 그렇게 열광하게 됐을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재차 그 답에 대해 시사할 것이지만, 그에 앞서 이런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전보다 훨씬 더 좋은 교육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그래서 더 복잡한 문화상품에 대한 개인의 취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지난 20년간 미국과 영국의 대학 학위 소지자 비율이 급진적으로 늘었다.) 이상적으로 보자면 미술은 진취적이고 유쾌한 노력을 수반하며 창작적 사고가 가능한 장르이다. 문화계의 몇몇 분야가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루하고 인습적인 방법론에 지친 많은 관객들이 새로움에 도전하는 미술에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둘째, 비록 교육받을 기회가 더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더 적게 읽고 있다. 대신 오늘날의 문화는 텔레비전, 유투브를 통해 소통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제2의 구술문화”라고 개탄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시각적 판단능력의 증대, 즉 시각 중심의 지적 오락을 더 폭넓게 즐길 수 있게 됐다고 지적한다. 셋째, 글로벌리즘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국경과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 바로 미술이다. 미술은 국제공용어이며 공통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이는 문자에 입각한 문화 형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17-18p)
우리 회사는 아티스트를 다루지 않습니다. 작품만 다루죠. 그렇게 하는 게 훨씬 결과가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봤지만 통제 불가능한 골칫거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31p)
그는 미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미술가라는 직업의 탈신비화에 있다고 믿는다. “학생들은 알아야 합니다. 미술이란 것이 저기 지나가는 행인처럼 그냥 평범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요.”(99p)
전 작가의 의도는 개의치 않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작품이 어떤 결과로 보여지는가 하는 겁니다.(101p)
“여기를 보세요. 차도 한 대 없고 소화전도 없어요. 모든 건물이 물에 둘러싸여 있어요. 특별한 장소성은 경험에 특별한 색깔을 입히죠. 예술이란 이국적인 장소의 잘 만들어진 쇼와도 같아요. 이보다 뭐가 더 설득력을 갖겠어요?” 카펠라조는 비엔날레를 충족되지 않는 판타지에 비유한다. “작품을 따라가며 느끼는 감동이나, 좋아하는 작가를 호텔 바에서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다는 식의 판타지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누구든 비밀스럽게 자신에게 뭔가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길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370-371p)
ㅡ 세라 손튼, <걸작의 뒷모습> 中, 세미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