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19

“그냥 일일 뿐이니까. 어떤 영화든 출연료를 준다는 것은 다 맡지.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거야. 물론 가끔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영화를 만날 수도 있지만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잖아? 공짜로 일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예술가들을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 기법이니 방식이니 하는 것들도 잘 몰라. 그냥 서라는 곳에 서서 대사를 읊고는 끝나면 집에 가는 거지. 그냥 연기일 뿐이야.”(23p)

“싫지는 않아. 이렇게 오랫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 그 정도만 말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거지.”(24p)

지난 2년 동안 스카이다이빙과 베이컨 축제, 회원 활동을 유지하기도 벅찰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인터넷 가상현실사회에 관한 기사들을 써온 버스터는 탈진한 끝에 글 쓰는 일을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은 직접 경험해보면 애초에 품었던 기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일들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꿀 만한 굉장한 경험이라고 거짓 기사를 써야 했다. 사륜차를 타고 사막을 달리는 것은 그로서는 이제껏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골연 그가 꿈꾸던 일로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후 그는 사륜차 운전이 즐거움을 주는 행위보다는 전문적이고 복잡한 일이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참을성 있게 사륜차를 운전하는 법, 속도를 높이는 법을 설명하는 강사 옆에 앉아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를 운전하려 고생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차라리 집에 돌아가 사륜차를 몰고 다니며 해변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해결하는 탐정소설을 읽는 편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뒤집어엎고 난 후 운전연습장에서 쫓겨난 그는 바로 호텔로 돌아와 한 시간 만에 뚝딱 기사를 써 재낀 다음 마리화나를 피우다 곯아떨어졌다.(34~35p)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세상을 올려다보며 이젠 더 이상 내려갈 데 없이 견고한 맨바닥 위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애니의 발밑이 한 번 더 꺼져 내렸다.(140p)

이 집안의 누군가 한 사람은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비록 제대로 내린 결정은 요란한 폭발이나 비명, 절규, 심리적 상처 같은 것으로 끝나지 않아 좀 시시하더라도 말이다.(218~219p)

부모가 그들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도 사실이고 그들을 자신들의 집에 거두어준 것도 사실이었다.(223p)

“당신은 마치 모든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날이 올 것처럼 말을 하지만, 이제까지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고려해보면 그런 날이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건 별로 상관없다는 거예요.(350p)

정신적 외상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작용하는 것인가? 직접 외상을 겪었던 당사자들은 현장에 함께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게 된다.(368p)

ㅡ 케빈 윌슨, <펭씨네 가족> 中,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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