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12
일단 정해지면 다들 지킨다. 왜냐면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게 더 귀찮은 일이니까.(47p)
지난여름 동안 아무도 조중균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으면서 조중균씨가 사라지자 모두들 조중균씨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들 조중균씨에게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모두가 기억하는 모두의 조중균씨가 있었다.(69p)
그 시절 나는 큰오빠를 괴물이나 마귀, 악당이라고 생각했고 좀 커서는 그냥 샐러리맨이라고 생각했다. 마귀에서 샐러리맨까지는 간격이 큰 듯해도 살다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못 되면 그것이 더 나쁜 일이다. 내 경우가 그렇다. 여덟 살부터 마흔 다 된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니까. 물론 학생이기만 하지는 않고 가르치기도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고 싶지만 지도 교수가 죽지 않고 선배들도 죽지 않아서 내 차례는 안 온다. 그래서 공부방을 한다.(207p)
그렇게 물이 남아도는 목욕탕에서도 불이 나 죽을 수 있다는, 사는 게 그렇게 우습다는 언니 말은 매번 아주 지독한 농담처럼 들렸다.(212p)
ㅡ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