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25

 

 

자크: 제가 생각하는 대로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저기 높은 곳에, 생각은 잘하는데 말이 따라가지 않을 거라고 적혀 있으니.(30p)

 

 

자크: 제 대위님이 살아 있는 내내 절 괴롭혀서 그의 죽음 덕분에 제가 드디어 그 엄격한 예의범절에서 해방됐다는 식으로 말씀하실 때는 정말 화를 낼 뻔했습니다.

 

주인: 좋네, 자크. 난 내가 원하는 걸 이룬 모양이군. 그대를 위로하기 위해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어디 말 해 보게나? 그대는 울고 있는데 내가 만약 그대 고통의 대상에 대해 말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는가? 아마도 그대는 더 심하게 울었을 테고, 난 그대를 더 비통하게 만들었겠지. 그래서 난 그대를 속였다네. 우스꽝스러운 추도사와 그 뒤를 이은 우리의 작은 논쟁으로. 이제 대위에 대한 생각은 그를 마지막 처소로 데리고 가는 장례 마차만큼이나 그대에게서 멀어졌다는 걸 인정하겠지. 따라서 난 그대가 사랑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네.(77p)

 

 

자크: 전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말했던 선행이나 악행에 대해 때로 얼굴이 붉어지기 때문이죠. 선행을 했던 사람도 나쁜 짓을 할 수 있고, 악행을 했던 사람도 속죄할 수 있으니까요.

 

주인: 진부한 아첨꾼도 준엄한 심판관도 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거라.

 

자크: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에겐 각자 자기만의 개성이나 관심, 취향, 열정이 있어서 그에 따라 말을 과장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하죠. 있는 그대로 말하라니요! 그런 일은 도시 전체를 뒤져도 아마 하루에 한 번 찾아보기도 힘들걸요. 게다가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보다 사정이 더 나은가요?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시키는 일도 도시 전체를 뒤져 하루에 한 번 찾아보기도 힘들걸요.

 

주인: 제기랄! 혀와 귀의 사용을 금지하는 격언이구나.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아무것도 듣지 말고,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그렇지만 자크야, 네가 생긴 대로 말하거라. 나도 내가 생긴 대로 들을 테니. 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말을 믿을 테니.(81-82p)

 

 

여기 내 아내와 구스의 대화가 있다.

“구스 선생님이시군요?”

“네, 부인,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제가 갔던 곳에서요.”

“거기서 뭘 하셨는데요?”

“고장 난 방아를 고쳤죠.”

“누구 건데요?”

“모르겠는걸요. 방앗간 주인을 고치러 간 건 아니니까요.”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옷을 잘 입으셨네요? 그런데 왜 깨끗한 양복 속에 더러운 셔츠를 입으셨죠?”

“셔츠가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왜 하나밖에 없죠?”

“한 번에 몸뚱어리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 남편은 없지만 식사하고 가세요.”

“아닙니다. 전 댁 남편에게 제 위도 식욕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댁 부인의 건강은 어떠세요?”

“그녀가 원하는 대로죠. 그녀 일이니까요.”

“아이들은요?”“최고죠!”

“특히 눈이 아름답고 피부가 좋고 아주 건강해 보이는 아이는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나은 셈입니다. 죽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뭘 좀 가르치시나요?”

“안 가르칩니다, 부인.”

“뭐라고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교리 문답도 안 가르친단 말이에요?”

“읽기도 쓰기도 교리 문답도 안 가르칩니다.”

“왜죠?”

“사람들이 제게 아무것도 안 가르쳤어도 제가 무식하진 않으니까요. 아이들이 똑똑하다면 저처럼 될 테고, 바보라면 아무리 가르쳐 봐야 바보밖에 더 되겠습니까?”(96-97p)

 

 

말더듬이만큼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절름발이만큼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 법이죠(117p)

 

 

자크: 나리,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슬퍼해야 할지 무엇을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는 법입니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을, 또 나쁜 것은 좋은 것을 가져오는 법이니까요. 우리는 저기 높은 곳에 쓰인 것 아래서 우리 소망과 기쁨, 슬픔 속에 제정신이 아닌 채 어둠 속을 걸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전 눈물을 흘릴 때 제가 자주 바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 그렇다면 웃을 때는?

 

자크: 웃을 때도 여전히 바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전 울거나 웃을 수밖에 없죠. 바로 그 점이 저를 화나게 합니다. 백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밤새도록 눈을 붙일 수가 없었어요.

 

주인: 아니, 네가 시도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말해 보거라.

 

자크: 모든 일에 아랑곳하지 않는 거죠. 아! 제가 성공할 수만 있다면.

 

주인: 그게 무슨 도움이 되지?

 

자크: 근심으로부터 해방되거나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데에, 또는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여 길모퉁이 말뚝에 부딪혀도 베개 위에 드러누울 때만큼이나 편안하게 느끼는 데에 도움이 되죠. 때로 제가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주 중요한 순간에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확고해도 아주 작은 반대나 하찮은 일에는 자주 당황하니 말입니다. 스스로 따귀를 때리고 싶을 정도랍니다. 그래서 전 체념했어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죠.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러나저러나 거의 마찬가지더군요. 단지 덧붙일 게 있다면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든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는 거죠. 그건 다른 종류의 체념으로, 더 쉽고 더 편해요.(121-123p)

 

 

자크: 전 원칙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내리는 규칙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르니까요. 모든 서약은 왕이 내리는 칙령의 전문과도 흡사하죠. 모든 설교자들은 우리가 더 나아질 거라고 하면서 그들의 교훈을 실천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들 자신은 틀림없이····· 미덕이란·····.

 

주인: 미덕은 좋은 것이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다 좋다고 말하니. 마실 것을 다오.(130p)

 

 

자크: 칼과 칼집의 우화죠. 어느 날 칼과 칼집이 싸움을 했답니다. 칼이 칼집에게 말하기를 “이 방탕한 여자야! 넌 매일 새 칼을 받아들이는구나·····.” 그러자 칼집이 칼에게 대답했죠. “당신은 바람둥이야. 날마다 칼집을 바꾸니·····.” “칼집, 당신이 약속한 건 이게 아니잖아·····.” “칼, 당신이 먼저 날 배신했어요·····.” 싸움이 식탁에까지 번지자 칼과 칼집 사이에 앉아 있던 자가 말했어요. “칼 그리고 칼집, 그대들은 변하는 게 좋겠소. 변하는 게 그대들 마음에 드니까. 하지만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건 잘못이오. 칼, 자넨 여러 칼집으로 들어가도록 하느님이 만들었다는 걸 모르오? 그리고 칼집, 자넨 하나 이상의 칼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졌다는 걸 모르오? 그대들은 칼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맹세하는 다른 칼들이나, 어떤 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다른 칼들이나, 어떤 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다른 칼집들을 미쳤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칼집, 그대는 단 하나의 칼에, 그리고 칼, 그대는 단 하나의 칼집에 만족할 거라고 맹세했을 때에 그대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미쳤다는 걸 알지 못했단 말인가.”(166-167p)

 

 

자크: 명예를 걸고 약속했을 때에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우리의 재판관에게 이 문제에 대해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고 명예를 걸고 약속했으니 다시는 말하면 안 되죠.

 

주인: 네 말이 옳다.

 

자크: 하지만 그 일을 다시 거론하지 않고도 앞으로 있을 배 번이나 더 되는 논쟁을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주인: 동의하네.

 

자크: 약정 1. 제가 나리께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는 한, 또 나리께서 저 없이 지낼 수 없다는 걸 제가 알고 느끼는 한, 필요할 때는 언제나 이 이점을 남용할 것임.

 

주인: 하지만 자크, 일찍이 이 같은 약정은 한 번도 만들어진 적 없었잖은가.

 

자크: 약정이 만들어졌든 안 만들어졌든 그런 일은 항상 행해져 왔으며 또 세상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행해질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나리와 마찬가지로 이 법칙에서 벗어나려고 시도를 안 해 본 줄 아십니까? 나리께서는 자신이 그들보다 더 능란하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시고, 나리께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필요의 법칙에 따르도록 하십시오. 약정 2. 자크가 주인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과 힘을 모르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주인은 자신의 나약함이나 관대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자크는 무례할 수밖에 없으며, 주인은 평화를 위해 이를 모른 체해야 할 것임.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정되었고, 자연이 자크와 주인을 만든 순간 저기 높은 곳에서 조인되었음. 따라서 주인은 칭호를 얻고 자크는 실권을 가질 것이라고 결정하는 바임. 만약 나리께서 이런 자연의 의도에 반대하신다면 성공하지 못할겁니다.

 

주인: 하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네 몫이 내 것보다 더 낫지 않느냐?

 

자크: 누가 그걸 반박했나요?

 

주인: 그런 조건이라면 내가 네 자리를 차지하고 대신 널 내 자리에 앉혀야겠구나.

 

자크: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나리께서는 칭호도 잃고 실권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대로 하도록 하죠. 우리 둘 다 잘 지내니, 그리고 남은 생애 동안 속담이나 만들며 지내죠.

 

주인: 어떤 속담인데?

 

자크: ‘자크가 주인을 끌고 간다.’라는 속담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지만 장차 나리나 저보다 더 가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반복적으로 듣게 될 것입니다.

 

주인: 그건 가혹한, 아주 가혹한 것 같구나.

 

자크: 주인님, 존경하는 주인님. 나리께서 아무리 바늘에 찔리지 않으려고 한들 바늘은 더욱 아프게 찌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끼리 합의한 걸로 하죠.

 

주인: 필요의 법칙에 합의를 하면 무슨 이득이 있지?

 

자크: 아주 많습니다. 어디서 멈춰야 할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명확히, 분명히 안다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의 모든 싸움은 나리께서 제 주인이라고 불리지만 실은 제가 나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말하지 않은 데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합의된 이상 거기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주인: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도대체 어디서 다 배웠지?

 

자크: 그 위대한 책에서요. 아, 나리, 아무리 생각하고 명상하고 세상 모든 책을 연구한들 그 위대한 책을 읽지 않는다면 한 평범한 서기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251-253p)

 

 

독창적인 사람은 첫 번째로 교육이, 다음으로 지나친 사회 경험이 소진시키지만 않았다면 더 많았을 것이다. 마치 은화에 새겨진 것이 유통되다 보면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282p)

 

 

자크: 어느 날 한 아이가 속옷 파는 가게 판매대 아래 앉아 온 힘을 다해 소리 질렀죠. 그 소리에 짜증이 난 여주인이 말했어요.

“얘야, 왜 소리를 지르는 거냐?”

“그들이 제게 A라고 말하도록 시키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왜 A라고 말하지 않니?”

“제가 A라고 말하면 그 즉시 제게 B라고 말하라고 하기 때문이죠.”

제가 나리께 키 작은 남자 이름을 대기만 하면, 전 나머지 이야기도 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319p)

 

 

자크: 나리, 두 가지를 지적해야겠군요. 하나는 제가 이야기를 할 때면 악마나 다른 사람이 꼭 제 이야기를 중단한다는 점이고, 나리 이야기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한 사람은 가시덤불을 달려도 찔리는 법이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어디다 발을 놓아야 할지 아무리 쳐다보고 걸어도 가장 평탄한 길에서도 가시덤불에 찔려 온통 살갗이 벗겨진 채 집에 도착하니 말입니다.(359p)

 

 

자크: 나리가 제게 보여 준 나쁜 본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바람 피우기를 원하면서도 딸은 얌전하기를 바라고, 아버지는 낭비하기를 원하면서도 아들은 절약하기를 바라고, 주인은·····.

 

주인: 하인 말을 중단하기를 바라면서도,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자주 중단하기를 바라면서도, 자기 말은 중단되기를 원치 않고·····.(360p)

 

 

자크: 그 아이는 골칫덩어리가 될 겁니다.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망나니가 될 수밖에 없는 좋은 이유라면, 자신이 부자가 될 거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망나니가 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좋은 이유죠.(379-380p)

 

 

 

ㅡ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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