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27
우리는 「엄청멍충한」뿐 아니라 자비 출판이나 독립 출판을 통해 나오는 소설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위와 비슷한 이야기였다. 결국 사람들이 집착하는 건 재밌는 이야기, 기발한 아이디어, 또는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어떻게 ‘잘’전달하느냐는 것. 독립 출판을 하는 이들은 실험적이거나 도전적인 작업을 하(려고 하)는 이들인데 소설은 오히려 퇴행적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소설에 대해 사실은 굉장히 관심이 없다는 것, 이를테면 미술은 현대미술이나 추상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문학에 대해서는 미술로 치면 인상파 이전의 인식, 현실이나 관념을 모사해내는 것(뛰어나게든 기발하게든)이라고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한 아이러니에 대해 말했다.(33p)
어떤 작가들은 지난날 자기 독자들의 마음에 들었던 걸 또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랬단 끝장이다. 대다수 작가들은 창작 수명이 짧다. 그들은 찬사를 들으면 그걸 믿어버린다. 글쓰기의 최종 심판관은 딱 한 명, 작가 자신밖에 없다. 작가는 평론가, 편집자, 출판업자, 독자에게 휘둘리는 날엔 끝장이다. 그리고 작가가 명성과 행운에 휘둘리는 날엔 강물에 처넣어 똥덩어리와 함께 떠내려 보내도 물론 괜찮다.(49-50p)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그의 책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규제 철폐’와 ‘세계화’같은 단어들이 실제 그 의미와 얼마나 반대되는 것인지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규제 철폐의 실제 의미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규제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금융업을 예로 들면 규제 철폐는 극소수의 거대 금융회사들이 시장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바꾼다는 의미다. 세계화는 국경의 소멸이나 자유로운 상거래와는 상관없고 중무장된 국경선 뒤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다는, 그러니까 국제적인 기업들이 전 세계의 노동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부려먹겠다는 의미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그런 움직임에 대항해 세계정의운동에 참여했고 진짜 국경 없는 세계를 제안하기 위해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회의를 분쇄할 목적으로 포위 및 봉쇄 작전을 실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와 그의 세력은 이날 이후 새롭게 제안된 거의 모든 국제무역협정을 침몰시켰다고 한다. 특히 남미에서 그 성과가 컸다는데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2000년 초부터 대중문화에서도 공공연하게 IMF나 WTO, 세계은행에 대한 공공연한 조롱과 비판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공 때문인지도 모른다.(147p)
“주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한다.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하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한다.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살게 된다.(201p)
고다르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 실린 1962년의 인터뷰에서 <비브르 사 비>의 오프닝 신의 의미를 묻는 톰 밀른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스크린에서 조금 이상한 것을 보는 즉시 그것을 이해하려고 지나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사실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이 <여자는 여자다>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그 영화의 의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화는 의도가 없었다. 테이블 위에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무슨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 어떤 것도 입증하고 있지 않다. 그 영화가 즐거움을 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영화가 모순적이 되기를, 꼭 함께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 나란히 놓여지기를, 즐거운 동시에 슬픈 영화가 되기를 의도했다. 물론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고 이것 혹은 저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법이지만 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하고 싶었다.(211p)
아감벤은 「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동시대인을 참으로 자신의 시대에 속하는 자란 자신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자, 하지만 그 간극과 시대착오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더 그의 시대를 지각하고 포착할 수 있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정지돈이 말했다. 아감벤에 따르면 특정 시대에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 모든 면에서 완벽히 시대에 묶여 있는 사람은 동시대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시대를 쳐다보지도, 확고히 응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시대인은 시대의 빛이 아니라 어둠을 인식하기 위해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다른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214-215p)
ㅡ 금정연, 정지돈, <문학의 기쁨> 中, 루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