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3

 


무릇 현실이란 범상한 자들의 상상력을 아득히 웃도는 법이다.

 

이렇게 신의 은총과 구원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들먹이는 걸 보고 있자니 신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억울해서 잠이나 잘 수 있을까. 장클로드 로망을 보며 영화 밀양의 납치범이 생각났다. 아이의 엄마는 신앙생활을 통해 겨우 분노와 절망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마침내 납치범을 용서하려고 그를 찾아간다. 그런데 납치범은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용서해주셨다.’는 주장을 한다. 대관절 누가 누구를 용서를 했단 말인가. 아이의 엄마가 고통 받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슬러 납치범을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의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납치범은 ‘나는 신에게 용서 받았습니다. 앞으로는 살아가는 죄를 받기로 했습니다.’ 등등의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마음을 평안을 얻었다면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까. 이 책의 살인자도 딱 그 짝이다. 

 

<마리프랑스, 저는 살아가는 죄를 받기로 했어요. 플로랑스의 가족과 내 친구들을 위해 이 고통을 떠맡기로 작정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요·····.(195p)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식의 왜곡되고도 모순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대단히 특이한 생각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전형성을 띤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자들의 주변에는 거의 항상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전형적인지.

 

 

 

 

한편으론, 절대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로망 가문은 약속을 잘 지키며 황금처럼 정직해야 하니까.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설령 그것이 진실일지라도 절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했다. 괴로움을 일으켜서도, 성공이나 장점을 떠벌려서도 안 되었다.(48p)

 

 

이렇게 말하고 나니,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두들 장클로드를 그런 아내의 완벽한 남편으로 생각했다는 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재판 과정에서 재판장은 장클로드가 사들인 포르노 비디오에 대해 놀라워하며 그걸로 뭘 했냐고 순진하게 물었다. 피고는 비디오를 봤다고, 때로는 아내와 함께 봤다고 대답했고, 재판장은 그런 말은 고인에 대한 중상모략이라고 다그쳤다. 포르노 비디오를 보고 있는 플로랑스를 상상이나 할 수 있냐고 재판장은 소리쳤고,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예,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하지만 제가 그랬을 거라고도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58-59p)

 

 

아이들은 언제나 모든 걸 알고 있고,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감춰서는 안 된다고들 말한다. 나는 누구보다도 그 말을 믿고 있다. 나는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젠 그런 말들에 자신이 없다.(86p)

 

 

예심이 진행되는 동안 판사는 악의나 의심을 품지 않았더라도 왜 누구 한 사람 그런 전화를 좀 더 일찍 해보지 않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놀라워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단단히 벽을 치고 산다 해도> 아내나 친구들이 회사로 전화 한 번 걸어 오는 일 없이 10년 동안이나 직장 생활을 해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건 어떤 미스터리와 숨겨진 설명이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미스터리는 거기에 아무런 설명도 없다는 것이고, 정말로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일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89-90p)

 

 

장클로드도 그 영화를 플로랑스와 함께 텔레비전으로 봤다고 했다. 플로랑스는 별다른 마음의 동요 없이 그저 영화가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야기는 좋게 끝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한 번도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지도, 그러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아내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벤치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도, 창녀에게도, 신부나 심리 치료사처럼 남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착한 영혼들에게도, 자살 방지를 도와주는 긴급 상담소의 익명의 귀에게도·····. 15년간 이중생활을 하면서 어떤 만남도 갖지 않았고,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며, 도박이나 마약 혹은 밤의 세계 같은, 그가 조금은 덜 외롭게 느꼈을 그 어떤 동류 집단에도 섞여 들지 않았다. 또한 결코 한 번도 바깥에 나가 의사인 척하면서 누굴 속이려 들지도 않았다. 집안에 들어설 때면, 모두들 그가 다른 무대에서 다른 역할을 하다 돌아온 거라고 생각했다. 세계를 돌아다니고 장관들을 만나고 공식 만찬에 참석하는 그 중요한 일들은 그가 밖으로 나서면 다시 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에게 다른 무대란 없었고, 다른 역할을 보여 줘야 할 다른 관중도 없었다. 밖으로 나서면 그는 완전히 헐벗은 상태였다. 부재 상태로, 빈 곳으로, 공백 상태로 되돌아가던 그의 상황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겪는 유일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는 분기점 이전에도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96-97p)

 

그녀가 레미와 결별하고 두 딸을 데리고 파리에 정착했을 때, 모임의 친구들은 버려진 남편 편을 들었다. 로망의 아내인 플로랑스만은 레미 역시 그의 아내 못지않게 실컷 바람을 피웠을 거라는 것, 만일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그들 부부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플로랑스 자신은 그로 인해 개인적인 괴로움을 겪은 일이 전혀 없으므로 부부 중 어느 누구도 단죄하고 싶지 않으며 두 사람 모두에게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110p)

 

 

이런 가족생활은 포근하고 따스했을 것이다. 그들 모두 포근하고 따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안으로부터 썩었으며, 한순간도, 단 하나의 제스처도, 설핏 든 잠조차 부패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패는 그의 안에서 자라났고 안에서부터 차츰차츰 모든 걸 삼켜 버려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그리고 이제는 오로지 그 부패가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와 모든 게 백일하에 드러나는 일만이 남았다.(148p)

 

 

그날부터 그는 자신의 고통을 가족들의 기억에 바치기 위해 <살아가는 죄를 받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의사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알고 싶어 했고 성찬을 준비하는 긴 단식이 곁들여진 기도와 명상의 기간에 들어섰다고 한다. 25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진 그는 자신이 거짓 외양들의 미로를 빠져나왔으며,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그리스도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했다. 그는 <난 한 번도 이렇게 자유로운 적이 없었고, 삶이 이렇게 아름다운 적이 없었다. 나는 살인자고,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가장 비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의 거짓된 삶보다는 이게 더 견디기 쉽다>고 말했다. 한동안 더듬거린 후에 그는 프로그램 변경에 성공한 듯이 보였다. 존경받던 연구자라는 인물이, 그보다 덜 만족스러울 것도 없는, 신비한 구원의 길에 서 있는 중범죄자라는 인물로 대체되었다.(179-180p)

 

 

<마리프랑스, 저는 살아가는 죄를 받기로 했어요. 플로랑스의 가족과 내 친구들을 위해 이 고통을 떠맡기로 작정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요·····.(195p)

 

 

다섯 시간의 심의 끝에, 장클로드 로망은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고 22년 동안은 가석방의 기회가 없다는 단서가 붙었다. 모든 게 순조롭다면 그는 2015년에 예순한 살의 나이로 감옥을 나올 것이다.(200p)

 

 

그들처럼 무조건적으로 장클로드에게 동의하고 있노라고 믿게 하여 그들의 신뢰를 남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 그는 장클로드가 아니었다. 내가 보낸 편지들에서 처음에는 그를 <로망 씨>라고 했고, 그다음에는 <친애하는 로망 씨>, 그리고 그 후에 <친애하는 장클로드 로망>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애하는 장클로드>까지는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마리프랑스와 베르나르가 로망의 겨울 의복에 대해 활기를 띠며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나는 그토록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애정이 감탄스러우면서 동시에 거의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을뿐더러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시험 전날 자살한 연인의 이야기 같은 뻔한 허구를 군말 없이 삼켜 버리거나, 베르나르처럼 이 불행한 운명의 밑바닥에 신의 계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길을 밟아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주변에 베풀고 있는 그토록 많은 선행을 위해서 그 온갖 거짓과 우연과 끔찍한 드라마가 필요했다는 생각을 하면·····. 그거야말로 제가 언제나 믿어 왔던 것이고, 그게 지금 장클로드의 인생에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모든 일은 잘 돌아가고 있고 그 의미란 게 결국은 신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리지외의 성녀가 되기 전의 어린 테레즈 마르탱이 황홀경에 젖어 들려주던 위대한 범죄자 프란지니 이야기, 두 여자와 어린 소녀를 죽인 그 살인범을 용서하고 신에게 기도하자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1887년의 사람들 역시 할 말을 잃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내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베르나르의 입장이란 게 단지 헌신적인 기독교 신자의 입장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했다. 나는 마리프랑스와 그가 내 작업을 기웃거리면서,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정의로운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뉘우치는 한 사람의 죄인을 위해 신의 가호를 기도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 카트린 에렐은 로망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로망은 주님의 무한한 자비와 주님이 자신의 영혼에 행하는 경이를 읊조리는 천사 같은 말들에 흔들려 다닐 것이고, 그러다 보면 현실과 직면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잃어버릴 거라는 거였다. 로망과 같은 경우에는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낫다고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트린은, 예외 없이 모든 경우에서, 고통스러운 명징성이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환상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211-212p)

 

 

 

ㅡ 엠마뉘엘 카레르, <적> 中, 열린책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