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19
착각할 수 있는 나이에는 착각을 하면 됩니다. 그 착각에 너무 깊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헤어나올 때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다가 인생이 늦어진다면? 늦어지면 됩니다. 10대나 20대에는 인생이 남들보다 3~4년 늦어지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몇 년 빠르고 늦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시기마다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딸만은 그런 과정을 생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한 욕심입니다. 청소년기에 그런 미망의 시기를 보내지 않고는 성숙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24-25p)
거기다가 근본적으로 특정종교의 윤리가 과연 일반사회의 법이나 제도의 직접적 근거가 될 수 있느냐도 문제입니다. 일부 극단적인 이슬람교 신자들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코란 구정을 들이대면서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논거는 특정종교 안에서 자기들끼리 규범의 유효성을 놓고 토론할 때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지, 사회적 공론의 장에 등장할 이야기는 아닙니다.(74p)
바스가 “당신은 남편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인가요?”라고 다시 묻자, 안토니아는 “어디 써먹게요?”라고 짧게 답합니다. 그러고는 “당신네가 가끔 놀러 오는 건 괜찮아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으니 당신들이 좀 도와준다면 고맙기는 하겠어요”라고 덧붙이지요. 잠깐 눈이 반짝한 바스는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그 댓가로 내가 얻는 게 뭐요?”라고 묻는데, 안토니아는 “커피, 계란, 야채 정도”라고 대답합니다.(119p)
모든 사회문제는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그쪽 논리를 따라가면 오히려 속이 편하지만, 양쪽 이야기를 듣고 나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런 헷갈리는 상황에서 기억할 만한 원칙이 바로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형사소송범에서 자주 논의되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변용한 표현인데, 누구 입장에 서야 할지가 불투명할 때 방향을 정하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주로 노동조합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은 대체로 이런 해석원리를 따르기 때문입니다.(183p)
제노싸이드는 소설이든 영화든 논픽션이든, 어느 누구도, 어떤 매체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르완다 제노싸이드에 대해 흔히 90만 명이 사망한 하나의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오해합니다. 하지만 제노싸이드는 하나의 사건이 아닙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르완다 제노싸이드는 사람 한명이 죽은 살인사건이 90만개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고, 죽음을 맞이한 상황도 모두 다르며, 지역에 따라 학살의 모습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살인사건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최소한 책 한권 분량의 소송기록이 필요하다고 할 때, 르완다 제노싸이드를 설명하려면 적어도 90만권의 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루에 한권씩 그 사연을 읽어도 2,465년 이상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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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엄청난 범죄는 결코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차대전 와중에 벌어진 아르메니아 제노싸이드는 오토만제국(터키) 정부와 군대에 의해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적군인 러시아에 동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강제수용소로 추방한 뒤 학살하는 방법을 취했고, 사망자는 30만~15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콘스탄티노플에 거주하던 약 250명의 아르메니아 출신 지식인들은 따로 체포되어 한꺼번에 처형되었습니다. 당시 영구 외교부의 정보장교로 일하던 아놀드 토인비는 사망자수를 대략 60만 명으로 추산했습니다. 오토만 제국은 아르메니아뿐만 아니라 아시리아와 그리스에서도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이 식량배급과 처형을 통해 학살한 우크라이나인만 해도 약 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2차대전중의 홀로코스트는 나찌 독일에 의해 치밀하게 실행되었습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학살은 크메르 루주 정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동티모르에서 이루어진 학살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도했고, 최소한 1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와중에 좌우 양측에 의해 수많은 양민학살이 자행되었고,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주도한 광주학살을 경험했습니다. 개인이 할 수 없는 막대한 규모의 살인도 국가가 나서면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347-349p)
ㅡ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中,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