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19
여고 3학년을 대상으로 한 강연원고를 다듬은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대단히 잘 썼다고 생각한다.
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는 아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대체로 잊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엄마를 착취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엄마”라고 부르며 시작하는 말은 뭘 해달라는 명령형의 순화된 버전 정도인 경우가 많다. 나는 내가 치워둔 게 분명한 물건을 찾을 때, 배가 고플 때, 내가 입었지만 내가 세탁하지 않은 옷을 찾을 때, 내가 주문했으며 엄마가 쓰게 하지 않을 물건의 택배를 받아야 할 때, 반찬이 맛있거나 맛없을 때.(137p)
ㅡ 이다혜,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中, 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