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29
예술에 ‘진보’는 없습니다. ‘경향들’이 있을 뿐이죠. 하나의 경향이 잘 전개되다가 완벽한 작품에서 정점을 찍으면 그후엔 다른 시도들이 나옵니다. 예술은 그런 식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요.(57p)
“그런데 왜 ‘피아노’라는 이름이 붙은 거예요?
“처음에는 ‘피아노포르테’라고 불렀어요. 이 악기를 맨 처음 고안한 사람들의 관심사를 잘 보여주는 명칭이죠.
“어째서요?”
“하프시코드는 균일한 세기의 짧은 소리를 내잖아요. 하프시코드 주자들은 연주자의 터치에 민감하게 달라지는 소리를 얻을 수 없다는 점, 음악적 구성을 점진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불만이었죠. 하프시코드로는 콘트라스트 효과밖에 얻지 못하니까요. 한마디로 그들은 여리게도 칠 수 있고 세게도 칠 수 있는 악기를 요구했습니다. ‘여리게’와 ‘세게’, 그게 바로 이탈리아어로 ‘피아노piano’와 ‘포르테forte’죠.”(113p)
연주 속도가 어떻게 되든 음가들 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아요. 바로 이 음가들 간의 관계가 리듬입니다.
속도는 템포죠. 그러니까 우리는 템포를 빠르게 당겨 살아가고 있는 거지, 리듬을 빠르게 한 게 아니에요. 이상으로 ‘삶의 리듬이 빠르다’는 표현이 왜 틀렸는지를 깨닫기 바랍니다.(133p)
“멜로디가 뭡니까? 리듬 있는 악절의 듣기 좋은 노래란 말이죠. 혹은, 리듬에 따라 배열된 높낮이가 다른 일련의 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멜로디에서 리듬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굉장히 크기 때문에 멜로디를 구성하는 음들의 음가를 바꿔버리면, 그런 식으로 리듬을 파괴해버리면 멜로디는 알아볼 수도 없게 돼요. 자, 들어봐요.
(피아노를 친다) 내가 지금 뭘 치고 있게요?“
“모르겠어요.”
“<난 좋은 담배가 있어>의 리듬을 바꿔 친 거예요. 이게 바로 가장 오래된 음악적 전개 형식들 가운데 하나의 원칙, 즉 ‘변주Variation’입니다. 리듬은 주재료, 음악 전체를 낳는 요소입니다. 한스 폰 뷜로는 요한복음의 한 문장을 살짝 비틀어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고까지 했죠. 잊지 마세요, 옛날 사람들에게 음악은 본질적으로, 그 무엇보다도 목소리의 진행, 행진, 몸짓을 제어하는 예술이었습니다. 시, 춤, 다시 말해 리듬의 예술들을 포괄하는 것이었죠. 게다가 리듬에 관한 것은 옛날보다 오늘날 더욱 본능적이고 덜 학문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음악 교육이 더 이상 리듬을 다루지 않게 됐다, 이거죠.(137-138p)“
“재즈는 아주 복잡한 조합의 결과랍니다. 우리는 재즈에서 미국에 이주한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리듬과 선율, 프로테스탄트 성가 등의 기본요소를 찾아볼 수 있어요. 화성악적 센스와 현대적 편곡 능력을 갖춘 아티스트들이 이 전부를 잘 버무려 변모시키는 거죠. 그런데 우리 쪽과 달리 비非유럽 음악에서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그렇게 뚜렷이 구분되지 않아요. 즉흥 연주는 재즈의 법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재즈 핫」의 저명한 평론가 위그 파나시에는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의 능력이 작품의 가치를 좌우하지만 재즈 음악의 본질적 가치는 해석, 즉 연주에 있다고 주장했답니다.”
“요컨대 재즈의 진정한 거장들은 단순한 연주자, 해석자 이상이라는 거군요. 자기 파트를 자유롭게 변주하기도 하고 즉흥 연주를 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 개별적인 유희들이 어떻게 화합을 이루죠?”
“물론 어느 정도 제한을 두고 전체적인 조화를 꾀해야죠. 재즈 오케스트라는 악기를 크게 두 섹션으로 나눕니다. 박자적 요소를 대표하는 첫 번째 섹션에는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기타 그리고 드럼 같은 타악기가 들어가죠. 이 섹션은 규칙적인 약동감을 제공함으로써 오케스트라의 기본을 이룹니다. 두 번째 섹션에는 자유리듬을 담당하는데, 보통 다섯 개의 색소폰과 두 개의 클라리넷 그리고 다섯 개의 금관악기(트럼펫과 트롬본)가 들어와요.”
“그런 설명을 들어도 다섯 개의 색소폰과 다섯 개의 금관악기가 어떻게 즉흥 연주를 하면서 서로 충돌하거나 귀에 거슬리는 대참사를 빚지 않는지 이해가 안 돼요.”
“우선 재즈에서 다 함께 즉흥 연주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군요. 솔리스트의 즉흥 연주도 규칙이 있어요.
솔리스트는 ‘명확하게 정해진’화성에 대해서 자유 변주를 하는 거예요. 화음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서 꾸밈을 넣죠.
“여기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재즈가 아주 단순한 화성을 쓴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요.”(141p)
지금은 독주악기가 오케스트라와 경합하는, 일반적으로 3부로 구성되는 악곡을 ‘콘체르토concerto’, 즉 협주곡이라고 부르죠. 이 단어 자체가 그런 뜻이에요. ‘경합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콘체르타레Concertare’에서 나왔죠. 콘체르토는 주인공이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죠. 눈부신 진행의 기회는 주인공에게로 한정돼 있어요. 보통 1악장 끝에서 오케스트라가 최고조에서 연주를 딱 멈추고 독주자가 그 곡의 테마를 기교를 뽐내며 연주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죠. 이걸 카덴차라고 하죠. 고전파, 낭만파, 현대파를 막론하고, 모차르트에서 슈만까지, 리스트에서 라벨까지, 협주곡의 특징은 대략 이렇습니다.(172-173p)
“현대음악의 경향들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한데 싸잡아 판단할 수도 없고 서로 다른 경향들을 짝지우기도 매우 어려워요. 일반적인 청중은 1750년 음악보다 1950년에 더 잘 맞게 조율된 귀를 갖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할아버지 세대쯤에 맞춰진 귀로 오만 가지 음악을 듣죠.”
“재미있는 얘기네요!”
“보통 사람은 모든 음악을 자신에게 자연스럽고 익숙한 음악 언어에 비추어 듣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 언어는 공공재에 속하기 때문이죠. 바로 19세기 말 프랑스 음악가들의 언어죠. 구노의 멜로디를 예로 듭시다. 감미롭고 우수하면서도 굉장히 편하게 들리죠. 그 이유는 이 멜로디가 수많은 모방을 통해 대중적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입니다. 60년 전의 청중에게는 구노의 음악이 그렇게 편하게 들리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루이즈 드 빌모랭의 시에 풀랑크가 곡을 붙인 <장난약혼>을 봅시다. 이 작품 곳곳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지향하는 선율 감각, 화음 선택에 있어서의 욕심을 느낄 수 있죠. 구노와 풀랑크는 같은 세상에 살았습니다. 증손자가 증조할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옷을 입을 순 없죠. 하지만 그들에겐 한집안 사람들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 분위기가 프랑스 음악사 전체를, 수세기 관통하고 있죠. 코틀레와 드뷔시, 륄리와 풀랑크는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습니다. 통사법은 변했지만 언어 그 자체는 동일한 겁니다.(350-351p)
그런데 우리의 음악 취향은 편견, 고정관념, 습관, 선입견으로 이루어진 체계가 좌지우지하죠. 그런 것들이 음악의 즉각적인 즐거움을 가로막는답니다.
(...)
청중에게 요구되는 것은 음악적 교양이 아니라 어떤 스타일의 특성을 받아들이는 건전한 습관이죠.
(...)
열려있는 귀는 처음 듣더라도 기분좋은 소리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귀입니다. 그 소리가 사거리에서 들리든 실험실에서 들리든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죠. 위대한 음악가들은 카페 콩세르에서 부르는 노래라 해도 그 노래의 아름다움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라벨도 생 장 드 뤼 광장에서 판당고를 추는 아이스크림 장사치들을 보고 피아노 3중주 A장조의 테마를 얻었다고 하잖아요. 그는 이 테마가 바스크 민요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아니었죠. 타그린 씨, 위대한 정신들은 자기들의 즐거움을 선택할 때만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너그러웠어요. 그들은 자기마음에 들기만 하면 ‘뭐 어때’라면서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일에서 음악의 기쁨이 태어나고 활짝 피어나는 겁니다.(353-356p)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음악이 암시하는 바를 몽상하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의 움직임과 일치를 이루는 것, 예측할 수 없지만 은밀히 기대했던 전개를 펼치며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형식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음악의 약동과 안식을 함께하고 모험이 제공할 온갖 놀라움을 기대하고 미리부터 즐기는 거죠. 그 모험이란 결국 소리와 시간의 갈등입니다.(653p)
ㅡ 롤랑 마뉘엘, <음악의 기쁨 上> 中, 북노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