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from Life 2017. 9. 7. 11:57

1. 최근에 롤랑 마뉘엘의 ‘음악의 기쁨’을 읽었다. 어렸을 때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은 있어도 음악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지식도 전무하여 걱정이 됐지만, 클래식 음악의 기본적인 교양을 쌓고자 책에서 언급하는 음악과 함께하며 성의 있게 읽었다. 썩 만족스럽다. 많은 음악가의 이름과 음악 이론으로 인해 책을 덮으면 ‘그래서 도대체 내가 무슨 책을 읽은 거지’라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의 차이, 오르간이라는 악기 하나로 오케스트라 편성이 가능한 이유, 콘체르토와 사중주 의미 등 책의 내용이 제법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수확이 있었다. 지금 상권을 읽은 상태인데 하권도 읽어볼까 한다. 좀 더 욕심과 흥미가 생겨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즐거움’도 함께 읽고 있다. 이 책의 1부는 가상의 상황을 상상하여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고, 2부는 저자 자신이 방송했던 대본이다. 이 책 역시 롤랑 마뉘엘의 책과 같이 대화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다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절판이라 아쉽다.

 

 

2. 항상 음악, 영화, 책 모두를 좋아하며 그것들을 즐기며 산다고 말해왔으나 그 즐기는 정도는 차이가 있다. 책은 읽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는 것에 비해 그렇게 많이 읽지 않는다. 음악은 이리저리 찾아가며 들었던 시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현재는 게으르고 귀찮아서 피치포크에서 신보 정도나 체크하고 있다. 그나마 영화를 가장 부담 없이 즐긴다고 할 수 있는데 뭐 영화도 영화 나름이긴 하다. 왕빙의 ‘철서구’나 벨라 타르의‘토리노의 말’같은 영화를 부담 없이 보긴 힘들 테니까. 그렇다 해도 그중 영화 감상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요즘은 그것조차 영 흥이 나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덩케르크’같은 영화는 개봉 전날에 미리 챙겨 봤을 텐데 지금은 그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건 말건 별 감흥이 없다. 꼭 봐야만 하는 영화는 없다지만 벌써 이렇게 취미 생활에 관심도가 떨어지면 더 나이 들면 뭐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런 기분은 연중행사와 같이 잠깐씩 매년 되풀이되는 것이므로 그냥 지나가게 놔두면 되겠지 싶다가도 역시 뭔가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3. ‘사람들과 조금 더 교유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 물론 생각만 하고 말로만 떠든다. 혼자 있을 때 잘 사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삶에서도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며 더 잘 산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말은 글자 그대로 ‘혼자 있는 삶’만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하는 삶’과 병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따라서 타인과 만남이 거의 없는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 소리다. 그렇다고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은데 가끔 외롭고 심심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도 외롭고 심심한 건 역시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관심 있는 분야의 동호회나 소모임 등을 기웃거리기도 해봤으나 마음에 드는 모임을 찾기는 요원하다. 그루초 막스의 말처럼 ‘나를 받아주는 모임이라면 나는 그 모임을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뒤틀린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이건 일부분 나 개인의 고약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기가 그렇게나 힘든 우리 모두의 이유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의 가치관은 더욱 공고해지고 취향은 점점 정교해진다. 세월을 통해 형성한 자신의 미묘한 기호를 낱낱이 설명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점점 귀찮아진다. 척하면 척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고대하는 것이다. 즉 가치관과 취향까지 고루 맞아떨어지는 친구를 만나고자 하는 것일 텐데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노력을 기울이기는 싫지만 영혼의 단짝은 만나고 싶다는 소린데, 이건 뭐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모임이나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위의 사항을 충족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노력을 더 기울이거나 기대치를 낮추기보다는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물은 아니지만 답은 알고 있다.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듯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하므로 타인에게 너무나 엄정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현재의 인연을 너른 마음으로 소중하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가치관과 취향의 문제에서도 융통성 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실행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4. 적고 보니 ‘아쉽다.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실행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와 같이 죄다 부정적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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