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15
어떻게 끝낼지 궁금했는데 마지막 와!
어느새 어둠이 깔린 하늘에는 달빛이 환하고, 여기저기 별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밤의 냉기가 죄수들을 엄습한다. 그 망할 녀석이 이렇게 늦게까지 뭘 하고 있는 걸까? 아직도 일을 더 하고 싶다는 건가? 해가 돋을 때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상부에서 정해준 열한 시간만으론 부족하다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현명하신 검사 나리께서 상여 급식[여기서는 추가형을 말함]을 줄 텐데 말이다! 작업 종료 신호를 듣지 못할 만큼 작업에 열중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것이, 슈호프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그처럼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작업시간이 너무 짧은 것에 불만을 느꼈다는 사실을 슈호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160p)
사실 슈호프는 지금 여기서 혼자 먹고 지내기보다는, 속세에서 가족 전체를 부양하고 있을 때가 훨씬 더 편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차입되는 소포가 얼마만 한 값어치의 물건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10년씩이나 가족에게 그러한 부담을 계속 지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슈호프는 숫제 소포를 받지 않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하다고 단념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결심을 한 슈호프였지만, 같은 반원이나 같은 막사안의 이웃 친구들이 소포를 받을 때면(소포를 받는 사람은 거의 매일같이 있었다) 자기에겐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저도 모르게 마음이 서글퍼지는 것이었다. 부활절 때도 무엇을 보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 아내한테 단속해놓았고, 부유한 반원의 심부름이 아니면 소포 수령자 명단이 나붙는 기둥 앞에 얼씬도 하지 않는 슈호프였지만, 그래도 이따금 누가 자기한테 달려와서, “슈호프, 뭘 하고 있나! 자네한테 소포가 왔는데!”라고 말해주기를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다렸다.(183p)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른다ㅡ소포 수령자란 그득 찬 식량 자루와 다름없어서, 아무리 뜯어도 자리가 안 난다고. 그러나 공을 들이지 않고 얻은 것은, 역시 나갈 때도 쉽게 나가게 마련이다. 하긴 그들 자신도 소포를 받기 전에는, 어떻게 하면 한 그릇의 죽이라도 더 많이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해서 가외 벌이의 기회를 노리기도 하고, 담배꽁초에 눈독을 들이지 않았던가! 간수와 반장은 말할 것도 없고, 소포 인계소의 사무원들에게도 응분의 사례를 해야만 한다. 자칫 잘못하는 날이면, 다음 소포가 왔을 때 질질 시간을 끌어서 1주일이나 명부에 이름이 나붙지 않을 우려도 있는 것이다. 사물 보관소의 보관계에겐 어떤가? 그에겐 모든 죄수들이 식량을 맡긴다. 체자리 자신도 내일 작업도 나가기 전에 소포를 표목별로 자루에 넣어서 그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도둑을 맡거나 검사에게 몰수당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당국의 명령이라고 한다.). 그에게도 넉넉히 쥐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맡겨놓은 물품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루 종일 남의 식량 속에 파묻혀 있는 쥐새끼들이고 보니, 무슨 일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또 예를 들어 슈호프와 같은 여러 가지 심부름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새로운 내의를 지급받기 위해서는 보급계 당번에게도 얼마간 찔러줘야 한다. 이발사만 해도, 면도칼을 제대로 종이에 닦기 원한다면(대개는 무르팍에 문질러버린다), 더도 말고 궐련 서너 개비는 쥐어줘야 한다. 아직 더 있다. 문화교육부의 계원. 그에게는 별도로 편지 취급을 부탁해서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게으름을 피워서 하루 종일 구내에 자빠져 있고 싶다면, 의사에게도 뇌물이 필요하다. 그럼, 한 선반을 사용하고 있는 이웃 친구ㅡ체자리의 경우엔 부이놉스키 중령ㅡ에게는 어떤가? 이쪽이 무엇을 입에 넣고 있는 처지고 보니 웬만한 철면피가 아니고서는 모른 체할 수가 없다.(213p)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점심때는 죽그릇 수를 속여 두 그릇이나 얻어먹었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나게 벽돌을 쌓아올렸다. 줄칼 토막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기다려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로 사왔다.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이나,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
사흘이 더해진 것은 그사이에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다.(238-239p)
ㅡ A.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中, 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