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8
저자가 말했다시피 ‘알아 둬서 나쁠 것 없는’정도가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모두가 알아두면 좋을 동사의 용례를 알려준다. 단숨에 읽으며 자신의 동사활용에 대한 지식을 확인해도 좋고, 헷갈리는 동사에 대해 틈틈이 참고해도 좋을 책이다.
문제는 ㄷ받침이 들어가는 동사들이다. 그중에는 다행스럽게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동사들도 있다. ‘굳다’는 굳게 받침을 지키고(굳어, 굳으니, 굳은, 굳을, 굳도록), 땅에 묻는다는 뜻의 ‘묻다’또한 받침의 변화 같은 건 아예 땅속 깊숙이 묻어 버린다(묻어, 묻으니, 묻은, 묻을, 묻도록).
문제가 되는 건 거닌다는 뜻의 ‘걷다’를 비롯해 ‘눋다’, ‘듣다’와 질문한다는 뜻의 ‘묻다’ 그리고 ‘붇다’, ‘싣다’ 등 활용할 때 ㄷ과 ㄹ받침을 모두 거느리는 동사들이다.
하지만 이들 단어도 한 가지만 주의하면 그다지 까다로울 것 없다. 자음 앞에서만 원래 받침인 ㄷ을 고수한다는 원칙이다. 실제로 ‘묻다’는 모음 앞에서는 ‘물어, 물으니, 물은, 물을, 물으면’으로 바뀌지만 자음 앞에서는 ‘묻게, 묻는, 묻도록, 묻자마자’로 쓰고, ‘싣다’ 또한 모음 앞에서는 ‘실어, 실으니, 실은, 실을, 실으면’으로 바뀌지만, 자음 앞에서는 ‘싣게, 싣는, 싣도록, 싣지’로 쓴다.(53p)
‘나누다’는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가르거나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을 구분해 분류하거나 말이나 의견을 주고받거나 음식을 함께 먹을 때 쓴다. 반면 ‘노느다’는 여러 몫으로 갈라 나눌 때만 쓴다.
‘나누다’는 ‘나누어(눠), 나누니, 나누는, 나눈, 나눌, 나누었(눴)다’로, ‘노느다’는 ‘노나, 노느니, 노는, 노늘, 노났다’로 쓴다.
‘나누다’의 당하는 말은 ‘나뉘다’와 ‘나누어지다’ 두 가지다. ‘나뉘어지다’라고 쓸 때가 있는데, 어법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낱말을 몇 겹으로 접어 놓은 것처럼 보여 지나치다. 우리말 동사의 당하는 말은 기본형에 ‘-이-, -히-, -리-, -기-’를 붙여 만들기도 하고, ‘-아(어)지다’를 붙이거나 일부 명사 뒤에 ‘-당하다, -되다, -받다’ 등을 붙여 만들기도 한다. 단, 어떤 경우든 두 번 당하게 만드는 것은 어법에도 어긋나고 말도 일그러지니 삼가는 게 좋다. 그러니 ‘-이-, -히-, -리-, -기-’가 붙어 당하는 말이 된 동사에는 ‘-아(어)지다’나 ‘-당하다, -되다, -받다’를 붙이지 않는다.
“그런 경우가 많은가요?”
“생각보다 많이 고치게 되더라고요. 가령 ‘찢다’에 ‘-기-’를 붙인 ‘찢기다’에 다시 ‘-어지다’를 붙여 ‘찢겨지다’라고 쓴다거나 ‘부르다’에 ‘-리-’를 붙인 ‘불리다’에 다시 ‘-어지다’를 붙여 ‘불려지다’라고 쓰고, ‘보다’에 ‘-이-’를 붙인 ‘보이다’에 다시 ‘-어지다’를 붙여 ‘보여지다’라고 쓰는가 하면 ‘잊다’에 ‘-히-’를 붙인 ‘잊히다’에 다시 ‘-어지다’를 붙여 ‘잊혀지다’라고 쓰는 식이죠.”
“그럼 ‘남겨지다’도 그런 경우인가요?”
“‘남겨지다’는 ‘남기다’가 ‘남다’의 당하는 말이 아니라 시키는 말인 데다 ‘남겨지다’가 ‘남다’의 당하는 말도 아니니 문제 될 것이 없죠. ‘이루다’와 ‘이루어지다’도 마찬가지구요.”
동사의 당하는 말은 우선 기본형이 당하는 말을 만들 수 있는 낱말인지를 살피고,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두 번 당하는 말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서 써야겠다.(69-70p)
서로 맞붙어 빈틈이 없게 되거나 어떤 곳에 이르거나 소식 따위가 전해질 때 닿는다고 한다. 천장이 낮아 머리가 닿고 기차가 목적지에 닿고 기별이 고향집에 닿는다.
‘오늘 안에 집에 닿을 수 있을까?’라고 쓰면 이상할 것 없지만 ‘약속 시간에 겨우 닿아서 왔지 뭐야’라고 쓰는 건 좀 어색하다. 이럴 땐 ‘약속 시간에 겨우 대서 왔지 뭐야’라고 쓴다.
‘대다’는 ‘닿게 하다, 제공하다’라는 뜻 말고도 ‘정해진 시간에 맞추다, 어떤 것을 목표로 삼거나 향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다. 그릇이 뜨거운지 손을 살짝 대 보고 사업 자금을 대고 기차 시간에 대기도 하지만 하늘에 대고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100p)
여러 사람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건 웅성거리는 것이고, 추위나 두려움 때문에 몸을 웅크리는 건 웅숭그리는 것이다. ‘웅숭그리다’는 특히 철자에 유의해 써야겠다.
어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한쪽 구석에 모여 있던 어린 학생들은 두려움에 몸을 잔뜩 웅숭그렸다. 어른들이 그저 웅성거리고 우왕좌왕하기만 했다면, 그러고는 웅숭그린 학생들을 챙겼다면 덜 안타까울 텐데 그중 일부는 웅성거리다가 저희만 살겠다고 도망가 버렸으니 어처구니가 없게 되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나 또한 이 땅에서 성인으로 산지 삼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저 웅숭그리며 사는 일에 대해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할밖에.
‘웅숭그리다’의 작은 말은 ‘옹송그리다’이다. ‘웅숭’이든 ‘옹송’이든 ‘-그리다’가 붙지 ‘-거리다’가 붙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자.(165p)
둘 다 동사나 형용사 뒤에서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나 상태를 거짓으로 그럴듯하게 꾸밀 때 쓰는 보조 동사다. ‘아는 척하다’, ‘모르는 척하다’, ‘잘난 척하다’, ‘잘난 체하다’처럼 쓴다. ‘척하다’, ‘체하다’ 모두 붙여 쓰고, ‘알은체하다’, ‘알은척하다’, ‘젠체하다’는 앞말까지 붙여 쓴다.
‘알은체하다’나 ‘알은척하다’는 상대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넬 때 쓰는데, 흔히 ‘아는 척(체)하다’라고 잘못 쓰는 말의 표준어다. ‘아는 척(체)하다’는 많이 알거나 잘 아는 것처럼 군다는 뜻이니 잘난 척하거나 젠체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람을 봤으면 아는 척 좀 해라’라는 말은 ‘내 앞에서 잘난 척 좀 해라’라는 뜻이 되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모르는 척(체)하다’를 ‘모른 척(체)하다’로 쓸 때가 많다. 그런데 ‘모르다’는 ‘몰라, 모르니, 모르는, 모른, 모를, 몰랐다’로 쓰고 ‘모르는’은 현재 상황을, ‘모른’은 과거 상황을, ‘모를’은 미래 상황을 나타내니, ‘모른 척(체)하다’는 ‘나는 모르는 일이야’를 ‘나는 모른 일이야’라고 쓰는 것만큼이나 어색하다. ‘웃기는 이야기’를 ‘웃긴 이야기’라고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어젯밤 우리를 웃긴 이야기는 정말이지 웃기는 이야기였다’라고 써야 하는 것처럼 ‘모르는 척(체)하다’라고 써야 한다. 다만 ‘모르다’를 의존 명사 ‘채’와 함께 쓸 때는 ‘아무도 모른 채로 넘어가다’라고 쓰는 것이 맞는다.
아는 척도 해 봤고 모르는 체도 해 봤다. 때로는 잘난 척도 했을 것이다. 척하고 체하는 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 과하지만 않다면 귀엽게 봐 줄 만하고 하는 사람 또한 재미로 여길 만하다. 그러니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척과 체’는 아는 척도 아니고 잘난 척도 아니다. 그건 바로 괜찮을 척하고 괜찮은 체한 것이다. 정말 괜찮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괜찮지 않다. 당신도 그런가?(190-191p)
‘개소리하다’는 개처럼 짖는 소리를 낸다는 뜻이 아니라, 조리도 없는 말을 허투루 지껄인다는 뜻이다. 개소리의 ‘개’는 ‘참되지 못하고 함부로 된 것’을 뜻하는 접두어다. 반대말은 ‘참’이어서 참살구, 개살구와 같이 나누어 쓰기도 하지만 ‘참’은 생략할 때가 많다.
개소리뿐만 아니라 개자식 또한 강아지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막돼먹은 녀석이라는 뜻이고, 개꿈, 개떡, 개죽음, 개망신도 다르지 않다.
물론 동물을 뜻하는 ‘개’가 붙을 때도 있다. 개지랄은 개가 떠는 지랄이고, 개차반은 개가 먹는 차반, 곧 똥을 한다. 예전엔 개들을 풀어 키운 데다 사료랄 것도 없어 사람이 먹다 남긴 밥찌끼나 제가 눈 똥을 먹기도 했으니까.(209p)
ㅡ 김정선, <동사의 맛> 中,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