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from Life 2017. 10. 30. 11:51

2017/10/23

 

 

1. 지금은 당연하게 통용되는 개념이지만 생각해보면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 많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 등등. 인간은 태어날 때 모든 지식을 완벽히 갖추거나 세상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타고난 성별이나 자신이 자라며 겪었던 환경으로 인해 한쪽으로 치우친 시야를 가질 소지가 다분하다. 한국 한정으로 동시대 비장애인 남자의 삶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시대에 뒤처지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바로 자신의 지식을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하는 것(글자 그대로 최소한의 노력이다)이며 페미니즘은 그 지식 중 하나다. 페미니즘은 단일한 뜻으로 정립된 용어가 아니므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큰 줄기를 제외하고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이다. 철저히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공기처럼 당연시 여겨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새롭고도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는 것만 해도 페미니즘에 고마워할 가치가 충분하리라.

 

 

2. 지난 주말은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대신 드라마를 봤다. 5시즌으로 계획되어 있는 마인드헌터의 첫 번째 시즌. 몇 가지 얘기해보자면 첫째,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자의식 과잉으로 폭주하는 주인공의 변해가는 모습과 그 인물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을 볼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데이비드 핀처는 등장인물에 대한 애착이나 동정 따위가 없다는 게 느껴진다. 둘째, 극악무도한 범죄를 막으려면 그들이 도대체 어떤 생각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는 알아야 대처와 예방을 할 수 있다는 논리로 그들과 비슷한 범죄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이론을 정립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지켜보는 재미를 들 수 있겠다. 또 앞으로 여러 시즌에 걸쳐 더욱 자세히 표현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자들과의 만남을 일회성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함으로 인해 자연스레 형사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습도 느껴졌다. 셋째, 조금은 아쉬운 점인데 시대상 및 직업적 특성을 감안해도 여성 캐릭터가 지금보다는 더 의미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작에 핀처 뿐만 아니라 샤를리즈 테론도 참여했다고 하니 앞으로 기대해본다.

 

 

3. ‘의도는 좋았다’라는 말로 부적절한 행동의 의도를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왜 행동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행동의 의도를 얘기하나. 그런 논리로 선한 의도일 수도, 아닐 수도 있을 행동의 나쁨이 만회 되는 건 아니다. 보이지도 않고 실제로 알 수도 없을 의도를 추측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드러난 행위의 옳고 그름을 지적하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우리가 궁예처럼 관심법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적절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 어떤 선의가 있었을 것이라거나 적어도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며 과도하게 추측할 게 아니라 행위 자체만 보는 게 어떨까. 설사 의도가 좋았다 한들 행위가 적절하지 못했으면 행위의 부적절함을 따져 물을 일이지 의도를 물어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만고에 쓸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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