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

 

 

 

그런데 원래 기조는 7월 혁명 당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자유주의 역사가로 소르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는 샤를 10세의 왕정을 비판하다가 해직되기도 했던 사람이다. 7월 혁명으로 수립한 7월 왕정에 수상으로 입각하자마자 기조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돌변하여 현실을 절대 바꾸지 않으려는 완고한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렸다. 혁명을 주도하여 새 왕정을 세우고 수상이 된 뒤 하원에서 “무질서는 운동이 아니다. 혼란은 진보가 아니다. 혁명적인 상태는 사회가 진정으로 진보하는 상태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한 것이다.

기조는 자유와 질서를 파괴하는 제도로 보통선거를 규정하고, 선거권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정치적인 자유의 확대를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는 일정한 돈을 가진 사람만이 정치적인 자유와 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겼다.(364p)

 

 

 

ㅡ 이광연,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 中, 투비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