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30
소설리스트에서 김중혁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로 알게 된 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부커상을 수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알게 되어 이런 저런 책을 찾아봤는데 “10 1/2 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대충 살펴보고는 그 후로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이 책은 제목부터 땡겨서 보게 됐다. 구성은 간단하다. 한명의 독자를 가정하고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같은 사건들을 겪은 인물들이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일견 전형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만드는 점이 바로 줄리언 반스의 능력이겠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빛나는 유머들로 자주 즐거웠고, 가끔씩은 슬프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감상은 생략하고 아래의 인상적인 구절들로 갈음한다.
담배? 아, 당신은 분명히 담배를 안 피우겠지. 내가 담배 피워도 괜찮겠나? 물론, 나도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담배를 좋아하는 이유다. 맙소사. 우리는 방금 만났다. 그런데 당신 표정을 봐라. 뭔가 단단히 잘못 씹은 듯한 표정이다. 도대체 내가 담배 피우는 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인가? 50년 후면 나는 죽고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그때 건강 샌들을 신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쭉쭉 빨고, 더러운 물을 홀짝거리는 원기 왕성한 도마뱀이 되겠지. 그리고? 물론 난 내 쪽이 더 좋다.(20p)
사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에 본래 능숙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 그래서 난 혼자 스토크 뉴잉턴에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직장에 다녔고, 때로는 외로움에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소위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도 더 많이 하고 내가 그들을 좋아한다는 걸 보여 주고 이런저런 질문도 던지고 그러는 대신, 마치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지도 않는 듯, 그들이 나에게 흥미로운 존재가 못 된다는 듯이 굴며 입을 닫아 버리고 만다. 그러면-아주 당연하게도-그들은 내가 충분히 흥미로운 존재가 아님을 곧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 난 이런 내 약점을 깨닫지만, 다음부터 좀 더 잘 처신하겠다고 결심하기는커녕, 또다시 얼어붙고 만다. 세상 사람 중 반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건너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만해야 한다. 그건 악순환이다.(35~36p)
“인생도 은행일 같았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은행일이 쉽고 간단하다는 말은 아냐. 어떤 일은 굉장히 복잡하지. 그러나 열심히 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어. 아니면 어딘가에 그걸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지. 설사 일이 다 끝난 뒤,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말이야.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p)
내 경험으로 보건대, 걱정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드는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십이라는 고성능 스피커를 타고 방송되는 골칫거리가 된다.(61p)
나는 그 단어를 사랑한다. 지금.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그때는 사라졌다. 내가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 자신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이해시킬 수 없었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때였고, 그때는 사라졌다. 지금은 지금이다. (...) 과연 이런 가정들이 존재할까? 텔레비전을 보면 괴팍히기 이를 데 없는 늙은 숙모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흥미롭게도 성격이 다양한 어른들로 가득한 재미있는 가정들이 늘 나온다. 가족은 기복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협력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가 되던 간에 <가족 편>에 선다. 하지만 인생은 정말이지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가족은, 그 숫자가 적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어떤 때는 누가 죽어서, 어떤 때는 이혼으로, 대개는 의견 차이 또는 권태로 헤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구도 <가족>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좋아하는 엄마, 그들이 미워하는 아빠, 또는 그 반대가 있을 뿐이다.(73p)
밀월, 혹시 당신이 어원에 밝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 말하자면, 이 말은 최근에 와서는 단지 면세품 구입과, 똑같은 장면을 담은 사진을 잔뜩 찍는 결혼 휴가를 뜻한다.(86p)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때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그렇잖은가? 음악이 멈추고 갑자기 서로의 눈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따위의 극적인 순간 같은 건 없다고. 물론, 어떤 사람한테는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아냐. 아침에 잠이 깼는데 같이 잔 남자가 코를 골지 않는 걸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어. 그게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진짜같이 들리긴 하지만.(97p)
외모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은 외모에 관심이 있다. 누구나 다 관심이 있다. 문제는 형편없는 외모인데도 자신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오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외모가 엉망인 것은 자기 정신이 차원 높은 것에 열중하기 때문이며, 워낙 바쁘다 보니 머리 감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며, 당신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모습 또한 사랑할 것이라고 건방을 떤다.(135p)
고작 감기 든 걸 가지고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고 극구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지를 놈은 나에게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인간들은 말한다. “나, 지독한 독감에 걸렸어.” 오, 천만에. 당신은 독감에 걸린 게 아니다. 단지 콧물이 조금 흐르고 약간의 두통이 있으며 귀가 좀 멍할 뿐으로, 그건 지독한 독감이 아니라 가벼운 감기일 뿐이다. 지난번과 같은, 그리고 그전에도 걸렸던 가벼운 감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171~172p)
<사랑, 그리고>. 이 주장은 단순하다. 세상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인생의 목적, 기능, 기초, 그리고 주된 선율은 바로 사랑이며, 그리고 다른 모든 것-다른 모든 것-은 그저 <그리고>, 즉 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첫 번째 범주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 불행한 대다수 사람들은 사랑보다도 주로 인생의 <그리고>를 믿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그것이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일지라도 일시적인 젊음의 광풍일 뿐이며,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의무로 향해 가는 시끄러운 서곡일 뿐이다. 그들은 실내 장식품보다 더 확실하고 불변하며 견고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나누는 유일한 방법이다.(177p)
“엄마, 난 규칙이 있는 줄 알았어.” (...) 사람들은 결혼하면 으레 하는 소리처럼 결혼이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요. 그 애가 그런 말을 믿을 만큼 고지식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의해-적어도 잠시 동안이라도-어떤 식으로든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거나 그냥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나이 이제 오십이 넘었고, 만약 당신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가지는 생각해 낼 수 있어요. 남자들이 나이 많은 여자 때문에 아내를 떠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이걸 빼고는, 어떤 일이든지 다 있을 수 있고 다 정상이랍니다.(211p)
당신 자신의 행복은 당신 책임이야-행복이 소포 뭉치처럼 문 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만 바랄 수는 없으니까. 이런 문제는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해.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야>하고 생각해. 하지만 <왕자님들 환영>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지 않으면 다 소용없어.(218p)
“불행을 안고 떠나면, 과거의 한때는 모든 게 완벽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264p)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평생의 진리가 되는 것이 간혹 있답니다. 그런 진리들은 뼈에 사무치도록 당신을 짓누르지도 않아요. 그리고 한 번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해 볼 여지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런 진리를 두 번 경험한다면, 그 진리는 날 짓눌러 숨 막히게 할 겁니다. 난 <이게 진리다> 따위의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싶진 않아요.(278~279p)
난 이제 사랑받는 일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포악하고 비열한 황제가 될 계획을 세웠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의적으로 비열하게 군 적은 없는 사람이다. 그건 내 체질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건 말건 그런 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옛날의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동의를 얻는 데 애를 썼다. 요즘은 이렇건 저렇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286p)
그는 저녁 내내 모든 걸 좋게 만드는 데 아주 능숙해. 하지만 항상 다음 날 아침이 있다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나는 그이가 행복하니까 기쁘다, 나도 행복하다. 이 정도면 부러울 게 없어,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아. 안 그래? 행복하면서도 현실적이어야 해. 그게 진리라고.(308p)
사랑, 존경, 남성적 매력. 이 세 가지 모두를 스튜어트에게서 얻었다고 생각했어. 이 세 가지 모두를 올리버에게서 구했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 셋을 한꺼번에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314p)
ㅡ 줄리언 반스, <내 말 좀 들어봐> 中, 열린책들
소설리스트에서 김중혁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로 알게 된 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부커상을 수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알게 되어 이런 저런 책을 찾아봤는데 “10 1/2 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대충 살펴보고는 그 후로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이 책은 제목부터 땡겨서 보게 됐다. 구성은 간단하다. 한명의 독자를 가정하고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같은 사건들을 겪은 인물들이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일견 전형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만드는 점이 바로 줄리언 반스의 능력이겠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빛나는 유머들로 자주 즐거웠고, 가끔씩은 슬프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감상은 생략하고 아래의 인상적인 구절들로 갈음한다.
담배? 아, 당신은 분명히 담배를 안 피우겠지. 내가 담배 피워도 괜찮겠나? 물론, 나도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담배를 좋아하는 이유다. 맙소사. 우리는 방금 만났다. 그런데 당신 표정을 봐라. 뭔가 단단히 잘못 씹은 듯한 표정이다. 도대체 내가 담배 피우는 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인가? 50년 후면 나는 죽고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그때 건강 샌들을 신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쭉쭉 빨고, 더러운 물을 홀짝거리는 원기 왕성한 도마뱀이 되겠지. 그리고? 물론 난 내 쪽이 더 좋다.(20p)
사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에 본래 능숙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 그래서 난 혼자 스토크 뉴잉턴에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직장에 다녔고, 때로는 외로움에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소위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도 더 많이 하고 내가 그들을 좋아한다는 걸 보여 주고 이런저런 질문도 던지고 그러는 대신, 마치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지도 않는 듯, 그들이 나에게 흥미로운 존재가 못 된다는 듯이 굴며 입을 닫아 버리고 만다. 그러면-아주 당연하게도-그들은 내가 충분히 흥미로운 존재가 아님을 곧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 난 이런 내 약점을 깨닫지만, 다음부터 좀 더 잘 처신하겠다고 결심하기는커녕, 또다시 얼어붙고 만다. 세상 사람 중 반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건너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만해야 한다. 그건 악순환이다.(35~36p)
“인생도 은행일 같았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은행일이 쉽고 간단하다는 말은 아냐. 어떤 일은 굉장히 복잡하지. 그러나 열심히 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어. 아니면 어딘가에 그걸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지. 설사 일이 다 끝난 뒤,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말이야.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p)
내 경험으로 보건대, 걱정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드는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십이라는 고성능 스피커를 타고 방송되는 골칫거리가 된다.(61p)
나는 그 단어를 사랑한다. 지금.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그때는 사라졌다. 내가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 자신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이해시킬 수 없었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때였고, 그때는 사라졌다. 지금은 지금이다. (...) 과연 이런 가정들이 존재할까? 텔레비전을 보면 괴팍히기 이를 데 없는 늙은 숙모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흥미롭게도 성격이 다양한 어른들로 가득한 재미있는 가정들이 늘 나온다. 가족은 기복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협력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가 되던 간에 <가족 편>에 선다. 하지만 인생은 정말이지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가족은, 그 숫자가 적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어떤 때는 누가 죽어서, 어떤 때는 이혼으로, 대개는 의견 차이 또는 권태로 헤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구도 <가족>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좋아하는 엄마, 그들이 미워하는 아빠, 또는 그 반대가 있을 뿐이다.(73p)
밀월, 혹시 당신이 어원에 밝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 말하자면, 이 말은 최근에 와서는 단지 면세품 구입과, 똑같은 장면을 담은 사진을 잔뜩 찍는 결혼 휴가를 뜻한다.(86p)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때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그렇잖은가? 음악이 멈추고 갑자기 서로의 눈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따위의 극적인 순간 같은 건 없다고. 물론, 어떤 사람한테는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아냐. 아침에 잠이 깼는데 같이 잔 남자가 코를 골지 않는 걸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어. 그게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진짜같이 들리긴 하지만.(97p)
외모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은 외모에 관심이 있다. 누구나 다 관심이 있다. 문제는 형편없는 외모인데도 자신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오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외모가 엉망인 것은 자기 정신이 차원 높은 것에 열중하기 때문이며, 워낙 바쁘다 보니 머리 감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며, 당신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모습 또한 사랑할 것이라고 건방을 떤다.(135p)
고작 감기 든 걸 가지고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고 극구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지를 놈은 나에게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인간들은 말한다. “나, 지독한 독감에 걸렸어.” 오, 천만에. 당신은 독감에 걸린 게 아니다. 단지 콧물이 조금 흐르고 약간의 두통이 있으며 귀가 좀 멍할 뿐으로, 그건 지독한 독감이 아니라 가벼운 감기일 뿐이다. 지난번과 같은, 그리고 그전에도 걸렸던 가벼운 감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171~172p)
<사랑, 그리고>. 이 주장은 단순하다. 세상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인생의 목적, 기능, 기초, 그리고 주된 선율은 바로 사랑이며, 그리고 다른 모든 것-다른 모든 것-은 그저 <그리고>, 즉 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첫 번째 범주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 불행한 대다수 사람들은 사랑보다도 주로 인생의 <그리고>를 믿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그것이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일지라도 일시적인 젊음의 광풍일 뿐이며,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의무로 향해 가는 시끄러운 서곡일 뿐이다. 그들은 실내 장식품보다 더 확실하고 불변하며 견고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나누는 유일한 방법이다.(177p)
“엄마, 난 규칙이 있는 줄 알았어.” (...) 사람들은 결혼하면 으레 하는 소리처럼 결혼이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요. 그 애가 그런 말을 믿을 만큼 고지식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의해-적어도 잠시 동안이라도-어떤 식으로든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거나 그냥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나이 이제 오십이 넘었고, 만약 당신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가지는 생각해 낼 수 있어요. 남자들이 나이 많은 여자 때문에 아내를 떠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이걸 빼고는, 어떤 일이든지 다 있을 수 있고 다 정상이랍니다.(211p)
당신 자신의 행복은 당신 책임이야-행복이 소포 뭉치처럼 문 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만 바랄 수는 없으니까. 이런 문제는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해.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야>하고 생각해. 하지만 <왕자님들 환영>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지 않으면 다 소용없어.(218p)
“불행을 안고 떠나면, 과거의 한때는 모든 게 완벽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264p)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평생의 진리가 되는 것이 간혹 있답니다. 그런 진리들은 뼈에 사무치도록 당신을 짓누르지도 않아요. 그리고 한 번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해 볼 여지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런 진리를 두 번 경험한다면, 그 진리는 날 짓눌러 숨 막히게 할 겁니다. 난 <이게 진리다> 따위의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싶진 않아요.(278~279p)
난 이제 사랑받는 일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포악하고 비열한 황제가 될 계획을 세웠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의적으로 비열하게 군 적은 없는 사람이다. 그건 내 체질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건 말건 그런 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옛날의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동의를 얻는 데 애를 썼다. 요즘은 이렇건 저렇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286p)
그는 저녁 내내 모든 걸 좋게 만드는 데 아주 능숙해. 하지만 항상 다음 날 아침이 있다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나는 그이가 행복하니까 기쁘다, 나도 행복하다. 이 정도면 부러울 게 없어,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아. 안 그래? 행복하면서도 현실적이어야 해. 그게 진리라고.(308p)
사랑, 존경, 남성적 매력. 이 세 가지 모두를 스튜어트에게서 얻었다고 생각했어. 이 세 가지 모두를 올리버에게서 구했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 셋을 한꺼번에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314p)
ㅡ 줄리언 반스, <내 말 좀 들어봐>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