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4

 



휘영은 세계에 신이 없다면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따위의, 내가 딱 싫어하는 류의 화제를 자꾸 테이블에 올렸다.(60p)

 

 

이런 환경에서 어지간한 인간들은 좀스럽고 추한 모습을 보인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수업이 있기 몇 시간 전부터 강의실 앞 복도에 신문지를 깔고 기다리는 녀석들과 내가 같은 급이라는 게 한심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자습실에서 제대로 앉아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정재준 한국사><황남기 헌법>이니 하는 책들에 밑줄을 그으며 중얼중얼 법 조항들을 외우고 있다 보면 이런 공부에 정말 젊음을 바쳐야 하나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134-135p)

 

 

나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마음 놓고 내 처지를 하소연할 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을까 생각했다.

휘영이라면 혹시 학교 도서관에서 아직까지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술 한잔 사달라면 사주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158-159p)

 

 

술에 취하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같이 마실 사람도 없었다. PC방으로 출근해 7급 공무원 시험용 국어 공부를 두어 줄 하다 중학생들에게 과자를 팔고 초등학생을 두들겨 팬 내 꼴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170p)

 

 


 

장강명, <표백>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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