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17
도블라또프의 ‘여행가방’, 줄리언 바지니의 ‘러셀 교수님,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뭔가요?’, 이오네스코의 ‘노트와 반노트’, 시인 이승훈을 알게 되었다. 읽어봐야지.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건 괜찮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건 안 돼. 왜냐하면 그게 더 어려우니까.”(38p)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나는 지금까지 내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건 전혀 오해가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가 (여자라서) 겪어야 하는 일들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남자라서)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무지이거나 묵인이거나 잠재적 동조리 오해가 아니다.
비단 택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병원에서, 술집에서, 노래방에서, 클럽에서, 집에서·······.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여성들은 크고 작은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위의 단어들과 함께 여성, 범죄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보라).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가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여성혐오 사회가 맞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혐오가 아니라는 주장들은 그 자체로 우리가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48p)
하지만 <지상의 밤>과 우리 사이에는 30년 가까운 시차가 있다. 우리는 그때의 사람들이 보던 것과는 다른 것을 본다.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우리는 우리가 숨 쉬는 것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시간과 함께 많은 것이 변한 후에야 뒤늦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엄청 많은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난 후에야 미세먼지라는 말을 알게 된 것처럼. 물론 30년 후의 사람들은 또 다른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60p)
나는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고통을 호소하며 혹시 모를 교통사고 후유증을 걱정하는데 나는 같이 병원을 가지는 못할망정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친구 맞나? 사이코패스 아닌가? 인생의 모든 비극은 지금 아는 걸 그때는 모른다는 점에 있다. 그때 알던 것을 지금은 모르기도 하고·······(106p)
즉흥 강연의 최대 단점은 강연이 끝난 후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죽기도 좀 애매하다·······
강연을 예정보다 일찍 마치고 막차를 탔다. 도서관에서 편의를 봐준 덕이었다. 어쩌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에서 일박을 허락하기에는 내가 조금 부족했는지도·······
나는 터미널에서 버스에 탔다. 출발 시각을 5분 앞두고 표 검사를 시작했다. 내 표를 본 남자가 말했다. “내리세요.”
“네?” 내가 되물었다.
“내리라고요.” 남자가 내게 표를 돌려줬다.
“왜요?”
“내려요. 가다가 울기 싫으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가방을 챙겨서 내렸다. 황당하고 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서울행 티켓을 들고 동대구행 버스에 타고 있었다.(113-114p)
ㅡ 금정연, <아무튼, 택시> 中, 코난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