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0

 


 

어쩌면 네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누구도 그 불을 쬐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곤 굴뚝에서 나오는 가녀린 연기뿐이거든. 그러니 그냥 가버릴 수밖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면서, 누군가 그 불 옆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할까?(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끈질겨야 할까!) 믿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빠르든 늦든 오고야 말 그때를 기다리겠지.(22p)

 

 

나에게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뚱딴지같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바보 같은 기대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이 아무리 말도 안 되고 바보 같다 해도, 더 나은 대안이 없는 이상 그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23p)

 

 

밀레의 편지에도 늘 그가 봉착한 여러 문제가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러저러한 일을 꼭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일을 해 나갔고,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다. 반면 빌더스의 편지를 보면 “이번 주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망쳐버렸다. 이런저런 콘서트나 놀이에 참석한 뒤에는 전보다 더 비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는 식의 글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밀레의 감동적인 면은 “그럼에도 나는 이런저런 일을 꼭 해야 한다”는 분명한 태도이다. (78p)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125p)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그런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델이 떠나버리고 혼자 남게 되면 갑자기 나약한 감정이 나를 덮치곤 한다.(141p)

 

 

우리 같은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아프게 되면 방금 죽은 불쌍한 관리인보다 더 고독해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있고, 집안일을 돌보면서 바보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만 하고 홀로지내면서 가끔은 바보처럼 살고 싶어 한다.

우리의 육체를 보더라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친구가 필요하다.(176p)

 

 

화가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 이제껏 내가 생활했듯 집에 혼자 틀어박혀 지내면서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는 것 외에 다른 기분전환 거리도 없고, 온갖 이웃들이 비난하는 생활을 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240p)

 

 

그림을 그리느라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248p)

 

 

“나는 이런저런 것을 그리고 싶다”라고 미리 말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면,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면, 항상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겠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때에 뜻밖의 성과를 거두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던, 기본적으로 아주 다른 시골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여러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림을 더 훌륭하게 끝맺고 싶다, 정성들여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억제하며 매일의 경험과 보잘것없는 작업들이 쌓여 나중에는 저절로 원숙해지며 더 진실하고 완결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느리고 오랜 작업이 유일한 길이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는 온갖 야망과 경쟁심은 잘못된 길이다. 성공한 만큼이나 많은 그림을 망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평온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지금 베르나르는 부모에게 계속 재촉받고 있다. 그러니 뭘 할 수 있겠니?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많은 화가들도 같은 곤경에 처해 있지.(277p)

 

 

 

ㅡ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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