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from Life 2018. 4. 26. 01:42

1. 주말에 부산 아트페어를 다녀왔다. 그림을 보러 여러 곳을 다닐 필요 없이 한 장소에서 다양한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어찌나 나에게 딱 맞는 기획인가 생각하며 내년에도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영화의 전당과의 연계로 관련 영화를 보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영화는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봤던 영화를 재관람하는 시간도 함께 가졌다. 영화 제목은 빅 아이즈. 영화의 만듦새는 그저 그랬지만 대작과 예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히나 후자인 예술에 대해.

컴퓨터로 많은 영화를 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나면 드는 생각이 있다. 역시 좋은 시설에서 영화를 보는 게 영화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크게는 영화의 인상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좋은 영화는 조악한 기기로 봐도 훌륭함이 드러난다지만 어두운 공간과 조용한 공간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으면 조금은 별로인 영화라 할지라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알고 있으니 인물보다는 배경에 집중해서 봤는데 두 번째 관람이라 처음에 놓쳤거나 몰랐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피사로라거나 캠벨 수프 같은 것들. 이런 걸 생각하면 영화와 같이 단위시간 당 정보량이 많은 매체는 배경지식에 따라 사람마다 같은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여지가 다르기도 하고 같은 이유로 시간이 흘러 반복관람을 하면 처음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모든 예술이 그런 건 아니겠으나 어떤 예술은 어떻게 포장하고 영업을 하느냐에 따라 예술의 지위를 누리기도 하고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혼자만의 예술이 되기도 한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이 탁월한 재능을 뽐내는 사람이라면 사술을 부리지 않고도 종국에는 메인스트림에 입성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나, 그런 선택받은 초특급 천재 예술가가 아니라면 역시 관건은 마케팅일까. 킨의 작품이 당대에 그렇게나 잘 나갔다는데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이름조차도 모를 정도가 되는 게 재밌기도 하고, 현재 잘 팔리고 유명한 많은 것들도 몇 십 년의 세월만 지나면 절대다수가 잊힐 거라는 점에 불현듯 슬퍼져서 무상한 느낌과 쓸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뱅크시가 만든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와 함께 관람하면 현대 예술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겠다. 영화 속 미술평론가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데 그걸로 마무리 한다.

 

낮춰서 맞추는 게 예술이 아니라 위로 끌어올리는 게 예술이다.”

 

 

2. 무기력하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 이러니까 원래는 되게 부지런하게 사는 줄 알겠지만 평소에도 그렇지 않은 데 바닥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느낌. 잡다한 일이야 언제든 일어나는 것이니 그 때문이라는 핑계는 우습고 그냥 이럴 때도 있는 거지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대관절 인생에 무슨 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남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고 싶어 하는 지도 궁금하다. 뭘 해도 재미도 없고, 술도 먹기 싫은데 그걸 먹는 걸로 풀어서 엄청 먹어대고 살이 찌는 듯하다. 징징거리는 거 되게 싫어하는 데 몇 평 되지도 않는 비슷비슷한 집구석에서 10년 넘게 사는 것도 지겹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인생이 나아질까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우울해진다. 무슨 이유로 앞으로의 내 삶에 장미 빛으로 가득한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기에는 적어도 나는 너무 많이 살았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그런 마음을 먹는 게 문제라고 너무나 쉬운 말로 응수하겠지만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없었던 삶이 앞으로는 왜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고진감래라 했던가. 과연 그럴까.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희망을 가져야 하니까? 현실을 직시하면 살 수가 없으니까? 그저 지금까지 살아왔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경 하에서 삶은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살다가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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