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2

 

 

몇몇 주제들이 책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공동체를 위한 노력, 감정이나 정념에 빠져들지 말고 이성에 따르는 행동의 필요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종국에는 소멸하기 마련이니 삶에 큰 미련을 가지지 말고 현재에 충실할 필요성, 관조적 태도 등을 들 수 있겠다.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 주제들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적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고 반성하며 다짐하는, 일종의 비망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완벽하게 떨쳐낼 수 없는 생각들이기에 이렇게 반복적인 글로 자신을 다잡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특정 주제의 반복적인 서술을 보며 느낀 점이 있다. 한 인간의 관심사나 인생의 화두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내가 지금까지 글이라고 적어둔 것을 읽어보니 대동소이한 주제들을 단어나 표현만 달리하여 적고 있었다. 책을 읽을 때도 느낀다. 이미 읽었던 책을 시간이 꽤 흘러 재독하면 새로운 면이나 생각할 거리가 많이 보이길 기대하지만 결국 읽고 나서 줄쳐놓는 부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다. 뭐 그렇더라고.

 

 

 

 

아름다운 것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다. 찬미는 그것을 이루는 성분이 아니다. 찬미를 받는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불리는 것들, 이를테면 자연의 산물이나 예술작품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아름다운 것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것은 법이나 진리나 선의나 겸손만큼이나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중 어느 것이 칭찬 받는다고 아름다워지고, 비난 받는다고 망가지겠는가? 에메랄드가 칭찬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지겠는가?(58-59p)

 

 

일어나는 모든 일은 봄철의 장미나 여름철의 과일처럼 친숙하고 잘 알려진 것들이다. 병과 죽음, 중상모략과 음모, 바보들을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모든 것이 그와 같다.(66p)

 

 

매번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매사를 올바른 원칙에 따라 행하는데 싫증내거나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마라. 실패하면 다시 그 원칙들로 돌아가고, 네 행동이 대부분 인간의 본성에 맞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네가 무엇을 지향하든 그것을 사랑하라.(76p)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소멸이 됐든 이주가 됐든 담담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 어떻게 하면 만족스럽겠는가? 신들을 공경하고 찬양하는 것, 사람들에게는 선행을 베푸는 것, 사람들을 ‘참고 견디거나’ ‘멀리하는 것’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87p)

 

 

맛 좋은 요리나 그와 비슷한 다른 음식들을 보고는 이것은 물고기의 시체고, 이것은 새나 돼지의 시체라고 생각하고, 팔레르누스 산 포도주를 보고는 이것은 포도송이의 액즙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자포를 보고는 이것은 조개의 피에 담갔던 양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성교란 것도 장기의 마찰과 진액의 발작적인 분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그런 생각들은 사물들의 본질과 핵심을 건드려 그 사물들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볼 수 있게 해준다. 너도 평생 동안 그렇게 하여, 사물들이 너무 믿음직해 보이거든 옷을 벗겨 그것들의 무가치함을 꿰뚫어보고 그것들이 뻐기는 후광을 걷어내야 한다. 가식은 무서운 사기꾼이다. 그리고 네가 진지한 것들을 상대하고 있다고 굳게 믿을 때 가장 현혹되기 쉽다.(91-92p)

 

 

이 얼마나 이상한 행동인가. 인간들은 자신들과 더불어 사는 동시대의 사람들을 칭찬하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자신들이 본적도 없고 보지도 못할 후세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상들이 너에 관하여 칭찬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네가 슬퍼하는 것과 대동소이한 것이다.

(...)

경기장에서 누가 우리를 손톱으로 할퀴고 머리로 받았다고 하자. 우리는 이를 나무라거나 못마땅히 여기거나 중에 그가 음모를 꾸밀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경계의 눈으로 살피되, 그를 적으로 여기거나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호의적으로 피할 뿐이다. 인생의 다른 상황에서도 그런 처신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우리의 경기 상대자들의 많은 부분을 너그럽게 보아주도록 하자. 앞서 말했듯이, 의심하거나 미워하지 않고도 그냥 피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94-95p)

 

 

원형극장이나 그와 같은 장소에서의 공연들이 똑같은 광경을 매번 되풀이하는 탓에 싫증이 나고 단조로움 때문에 구경가는 것이 싫어지듯이,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다. 위로나 아래로나 모든 것이 언제나 똑같고, 똑같은 것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

이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은, 평생을 진리와 정의와 더불어 살아가며 거짓말쟁이들과 불의한 자들을 호의로써 대하는 것이다.(104-105p)

 

 

악이란 무엇인가? 네가 자주 보아온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네가 자주 보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라. 너는 시선을 위로 향하든 아래로 향하든 어디서나 똑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고대사도 중세사도 현대사도 그것들로 가득 차 있고, 오늘날에는 도시들과 가정들이 그것들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것이 익숙한 것들이고, 모든 것이 무상한 것들이다.(108p)

 

 

네가 갖고 있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마치 이미 갖고 있는 양 연연해하지 마라. 오히려 네가 가진 것들 중에 가장 값진 것들을 골라, 만약 네가 그것들을 갖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그것들을 갈망했을지 생각해보라.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그것들을 과대평가하는 버릇이 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언젠가 그것들이 없어지면 너는 안절부절못하게 될 테니까.(115p)

 

 

자신의 악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데도 자신의 악에서는 벗어나려 하지 않고, 남의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테도 남의 악에서 벗어나려 하니 가소로운 일이다.

(...)

네가 선행을 베풀고 남이 그것을 받았으면 그만이지 어째서 바보같이 제3의 것을 바라느냐? 선행을 베푸는 것을 남이 보아주거나 또는 선행의 보답을 받는 것 말이다.(126p)

 

 

이웃의 의지는 그의 호흡이 그러하듯 내 의지와 무관하다. 우리는 각별히 서로를 위하여 태어났지만 우리의 지배적 이성은 각기 제 주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의 사악함이 내게도 불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것을 신은 원치 않았으니, 내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145p)

 

 

너는 누군가의 몰염치에 기분이 상할 때마다 “세상에 몰염치한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고 즉시 자문해보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마라. 이 사람도 반드시 세상에 존재해야 할 몰염치한자들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악당이나 신의 없는 자나 잘못을 저지르는 다른 모든 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떠올려라. 너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기하자마자 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하여 더 관대해질 것이다. “자연이 이런 잘못에 대하여 어떤 미덕을 주었을까?” 하고 즉시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무지한 사람에 대하여 일종의 해독제로서 온유함을 주었고,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또 다른 능력을 주었기 때문이다.(163p)

 

 

건강한 눈은 보이는 것은 모두 보아야 하며 “나는 초록색만 원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눈병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청각과 후각은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냄새 맡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위는, 마치 방아가 찧도록 되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찧듯이, 음식물이면 무엇이든 소화해야 한다. 그와 같이 건전한 정신은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내 자식들은 안전하게 해주소서!” 그리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만인이 칭찬하게 해주소서!”라고 정신이 말한다면, 그 정신은 초록색만 반기는 눈이나 부드러운 것만 찾는 이빨과 같다.(180p)

 

 

누군가 나를 경멸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알아서 할 일은 경멸 받을 말과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가 나를 미워하게 된다면?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할 일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호의적으로 대하고, 특히 그에게는 그의 잘못을 기꺼이 지적해주되 나무라거나 내가 참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지 말고, 저 유명한 포키온처럼ㅡ그가 진심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ㅡ점잖고 신사답게 지적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은 그런 것이어야 하며, 어떤 일에도 화내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신들에게 보여야 한다.

(...)

“나는 너에게 솔직하게 대하기로 결심했어.” 라고 말하는 자는 얼마나 썩고 불순한가. 인간이여, 너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그런 말은 미리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은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마에 적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마치 애인이 애인의 눈에서 당장 모든 것을 알아내듯이, 그런 것은 목소리의 울림을 들어도 당장 알 수 있고, 눈을 보아도 당장 알 수 있다. 소박하고 선한 자는 악취를 풍기는 자와 비슷하게 그에게 다가서는 사람은 다가가는 순간 원하든 원하든 않든 그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위장된 솔직함은 비수와 같다. 늑대의 우정보다 더 수치스런 것은 없다. 무엇보다도 그런 우정을 피하라. 선하고 소박하고 호의적인 그 모든 특징들을 눈에 드러내며, 그런 특징들은 숨어 있지 않는다.(188-190p)

 

 

4) 넷째, 너도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고, 너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네가 어떤 잘못들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설사 비겁하기 때문에 명예욕 때문에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동기에서 그들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에게도 그런 잘못을 저지를 기질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5) 다섯째, 그들이 실제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너는 확신하지도 못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라. 많은 일들이 상황의 요구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남의 행동에 대하여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그보다 먼저 많은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7) 일곱째,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지배적 이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견을 근절하고 그들의 행동이 끔찍하다는 판단을 버릴 각오를 하라. 그러면 분노는 가라앉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의견을 근절할 것인가? 어떤 모욕도 너에게 치욕을 안겨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남이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에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 강도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8) 여덟째, 우리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하는 그들의 행동보다는 그러한 행동에 대한 우리의 분노와 슬픔이 얼마나 더 괴로운 것인지 생각해보라.

 

 

 

ㅡ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中,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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