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
다 읽지는 못하고 반납했는데 윤리학의 기초적인 교과서 같이 느껴졌다. 공부하는 느낌으로 찬찬히 다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사야 될 듯.
관용은 물론 하나의 덕목이다. 그러나 이것이 윤리 상대주의를 찬성하는 좋은 논증이 되는가? 아니다. 만일 도덕이 개개의 문화에 따라 단지 상대적이라면, 또 만일 해당 문화가 관용의 원리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문화의 성원들은 관용적이어야 할 의무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허스코비츠와 셰퍼-휴즈도 관용의 원리를 한 가지 예외로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관용의 원리를 절대적인 도덕 원리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관용적이지 않기보다 관용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또한 그 어떠한 입장도 다른 입장보다 객관적으로 보아 도덕적으로 더 낫지 않다. 만일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가치에 기초해서 여성 할례를 비난한다면, 자신들의 문화적 가치를 이유로 여성 할례를 자행하는 사람들이 비난받지 않는 것처럼 서구인들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모든 도덕이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관용의 원리를 절대적인 원리로 다루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할 수는 없다.(56p)
“어느 문화가 옳고 또 어느 문화가 그른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애매해 보인다. 우리는 어느 한 체계를 다른 체계보다 옹호하기 위해서 추론하고 또 사고 실험을 실행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도덕적 믿음이 다른 문화의 도덕적 믿음보다 또는 우리 자신의 문화 내부의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믿음보다 진리에 더 가깝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도덕적 믿음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 믿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있다. 우리가 사실적인 또는 과학적인 문제에 관하여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우리가 도덕적 문제에 관해서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한 문화가 도덕적 인식을 함에 있어서 단지 혼동을 하거나 아니면 잘못을 범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자식들이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즐기는 이크 부족과 같은 문화가 자식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에게 보호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 주는 문화보다 덜 도덕적이라고 왜 말할 수 없는가?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자민족 중심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습속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비판을 통하여 원리들을 추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67p)
ㅡ 루이스 포이만, 제임스 피저, <윤리학> 中, 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