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기

from Life 2018. 8. 1. 13:04

휴가를 다녀왔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여행의 재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생각해왔고, 이번 여행은 일정이 빠듯하기도 하고 귀찮음이 폭발해서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여의치 않으면 여행지에서 살 요량으로 짐도 최소화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아무렇지도 않다가 몇 시간 정도 지나자 갑자기 눈 윗부분을 칼로 긁는 듯한 통증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여행에서도 부위는 다르지만 귀 통증으로 굉장히 힘들어했던 순간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아무렇지도 않고 멀쩡한데 혼자만 이러고 있으니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이비인후과에 꼭 한 번 들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통증이 가라앉은 지금 시점에서 실천에 옮길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시작이 좋지 않다고 느꼈으나 숙소에 짐을 풀고서부터 시작된 휴가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기억나는 순간은 스쿠버 다이빙과 스노클링으로 물고기 및 바다 구경을 한 것으로 시력이 좋지 않아서 그것들을 선명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긴했으나 그럼에도 역시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프리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을 배워보는 것도 수영과는 또 다른 취미 활동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도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다가 지겨워지면 수영을 하려고 책도 몇 권 챙겨갔는데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물에서 놀기 바빠서 누워서 책을 읽을 생각이 조금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가 기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휴가 말미에는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을 텐데 다음 휴가에나 해보는 걸로 했다. 휴가지에서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그에 따라 떠나야할 순간이 점차 다가오자 장강명이 쓴 책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 구절로 휴가의 마지막 감상을 갈음한다.

 

 

 

그렇게 말하고서 HJ는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을 쉬어?”

“이렇게 여행 구상을 해도 막상 가보면 또 실수할 거 같아서. 큰 구조는 비슷하다 해도 세세한 디테일은 다르잖아. 예를 들어 우리가 코타키나발루의 어느 호텔을 가게 되면, 거기에는 또 나름의 특성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부딪치게 되겠지. ‘아니, 여기 왜 이래?’, ‘어라, 여기에 이런 길이 있었네?’, ‘아 이 수영장은 아침에 와야 그늘이 져서 좋구나’, ‘이 수영장은 오후에 한가하구나’ 이런 걸 4일째에야 겨우 알게 될 텐데, 그러면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지.”(195p)

 

ㅡ 장강명, <5년 만에 신혼여행> 中,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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