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3

 

 

과학에서의 중요한 계기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나타났습니다. 과학에서는 답을 주는 것뿐 아니라 그 답의 부족한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죠. 어떤 종류의 질문에 대한 명료한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면 굉장히 새로운 질문을 끄집어내고 난해한 문제를 점차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답을 찾기 전에 답을 찾는 데 필요한 틀을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83p)

 

 

마지막으로 확률에 대한 수수께끼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수수께끼는 이겁니다. 지능이 굉장히 높은 여자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지능이 낮은 남자와 결혼한다고 해요. 통계적으로 그렇다고 합니다. 왜 그럴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서 보통은 별의별 답이 다 나옵니다. 가령 여자가 원래 남자보다 지능이 높다라든지, ‘똑똑한 남자는 똑똑한 여자를 싫어한다라든지. 진짜 이유는 뭘까요?

정답은 바로 확률적으로 대부분 남자들이 지능이 굉장히 높은 여자보다 멍청하니까입니다. 제가 앞에서 지능이 굉장히 높다고 했을 때는, 확률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보다 지능이 낮다는 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능이 굉장히 높은 사람은 웬만해서 자기보다 지능이 낮은 사람과 결혼하게 되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뭔가 사회적인 편견에 입각해서 답을 찾게 되지요.(138-139p)

 

 

사람들은 아마 과학 혹은 확률론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답을 할 겁니다. 사람이 그 도구를 가지고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나쁜 일도 할 수 있지, 그것 자체가 선하거나 악하다고 할 수도 없다고 말이죠.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확률론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선하고 악한 것도 확률론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엘리엇이 묘사한 베켓 대주교의 주장처럼 우리가 선하다고 결정한 것도 악한 결과를 가지고 올 확률이 있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약간의 선한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것들도 확률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140-141p)

 

 

수학적인 사고가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 수라는 개념 안에서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제한적인 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건전한 과학적 시각이란 근사approximation'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보다는,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중에 뒤집어지더라도 현재의 조건 안에서 이해해나가는 것이죠. 애로의 경우도, 뉴턴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근사해가는 과정, 항상 바꿀 수 있는 것, 그리고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학문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179p)

 

 

 

김민형, <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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