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4
미인의 기준은 상대적인 거지요, 하고 남자가 말한다. 사람마다 다 미인이라고 느끼는 대상이 다른 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고 여자가 물으며 다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 네, 그럼요, 아주 못생긴 사람이나 조금 못생긴 사람이나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나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다 포함해서요, 하고 양말 파는 남자가 말한다. 그렇지만 아주 못생긴 사람이 조금 못생긴 사람을 미인으로 느낀다고 해서 그 조금 못생긴 사람이 미인이 되는 건 아니지요.(125-126p)
“너희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 언니가 말을 이었다.
“사사건건 불만투성이면서도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 몰라. 자기 혼자 행복하자고 다른 사람 인생을 엿 먹이기 일쑤인데 정작 본인이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를 모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164p)
“한마디로 빈털터리라는 소리네.”
“그런 셈이지.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이랄까.”
그 순간에 웬일인지 그들이 잘생겨 보였다. 두 사람은 막 샤워를 끝낸 터였다. 토메의 머리카락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는데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만한 태도가 느껴졌다. 오빠나 나에 비해서 그들은 모든 일을 더 단순하고 명쾌하게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들었다.(166p)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며칠이나 우리 집에 있을 생각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멀리 나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것과 무례한 것은 완전히 다른 거니까 말이다. 공격적인 것과 호의적인 것도 완전히 다른 것이다.(167p)
한마디로 우리 가족은 늘 중산층이었고 각자 다양한 위치에서 시작해 때로는 모순적인 선택까지 해가며 신분 상승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의와 윤리의 상징적인 담보자인 굳건한 상류층의 장벽에 진입하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네. 우리가 끝끝내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사회 계층은 우리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었지만 동시에 씨족의 가장 깨어 있는 영혼들(이를테면 나 같은 사람 말일세)을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게 만들었지. 나는 겨우 열세 살이었던 그때 우리 가족의 소유가 아닌 그 농장에서 바로 그 불안의 실체를 엿볼 수 있었다네. 그것은 아찔한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자체가 무화되는 시간 속의 공간이었지.(174-175p)
ㅡ 로베르토 볼라뇨, <악의 비밀>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