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4

 

적지 않게 웃었고 많은 부분에서 찡했다.

 

 

 

아아, 어떡해·····. 저거 되게 크게 다친 거 같은데?”

감싸고 있는 모양 보니까 아무래도 십자인대 같은데.”

전방인가?”

아니야, 후방 같아.”

십자인대 아닐 가능성은 없어? 의료 팀이 저길 누르는 거 보면 연골일 수도 있지 않아? 그렇지? 그렇지? 아직 모르겠지?”

·····. 제발 십자인대는 아니어야 되는데·····. 제발, 제발.”

무심코 대화를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서 당황했다. 아무도 울지 않는데 이 중에서 가장 이방인인 내가 대체 왜. 대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저 묵직한 간절함이 말의 마디마디에 배어 나오기까지 그들이 겪었을, 그들만이 알고 있을 시간들 속에서 그들이 우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저기 쓰러져 있는 저 선수는 언젠가의 누군가였을 것이고, 언제나 모두의 공포 속 바로 자신이었을 것이다.(213p)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상상도 못하고 살아오다가 그 현실태를 눈앞에서 본 순간, ‘나도 하고 싶다.’를 넘어서 내가 이걸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구나.’를 깨닫게 될 때 어떤 감정이 밀려드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때로 운명적인 만남은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부터 과거를 내어놓는다. 생전 처음 가 보는 낯선 장소에서 오랫동안 품어 온 향수나 그리움을 느끼는 역설적인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마음으로 쑥 들어와 오랜 세월 잠자고 있던 어떤 감정을 흔들어 깨우면서 일어나는 그리움. 아마도 그 감정이 깊은 잠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어 묻혀 버리기 이전의 세월에 대한 향수, 어쩌면 회한.(236-237p)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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