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9

 


아 이 유머코드 어쩔거야 ㅋㅋ

 



당신, 요즘 이상하다. 애인이라도 생겼나 봐?”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쓸데없이 발끈한 것은 나였다. ‘내가 지금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매일매일 칼퇴근해서 아이들 씻기고 함께 방귀대장 뿡뿡이 노래 부르는 거 보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럼 내 애인이 뿡뿡이란 말이냐나는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22-23p)

 

 

말하자면 반년이 훌쩍 지나 그 30만 원의 행방이 도착한 것이었다. 편지는 아내가 나에겐 말하지 않고 벌써 꽤 오랫동안 후원해온 우간다에 사는 카와토라는 아홉 살짜리 친구에게서 온 것이었다. 카와토는 지난 성탄절에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는 첫 문장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겐 뜻밖의 선물이었고, 보내준 30만 원으론 암소 한 마리와 염소 두 마리를 샀으며, 자신의 운동복과 동생들의 옷을 샀다고, 띄엄띄엄 편지에 적었다. 카와토가 암소 한 마리와 염소 두 마리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다.

카와토는 편지 말미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뜻밖의 성탄 선물 때문에 우리 가족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이제 제 동생들도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내는 아마도 내 이름으로 카와토에게 특별 후원금을 보낸 모양이었다. 나는 잠깐 아파트 대출 이자 때문에 오랫동안 가계부를 들여다보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값비싼 유모차 앞을 서성이다가 돌아선 아내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고 염소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저 먼 나라 친구를 생각했다. 염소 한 마리에 4만 원. 나는 어쩌면 내가 평생 꼰대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다 아내 덕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73-74p)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모른다. 아이들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순간 아이들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아들의 여자 친구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93p)

 

 

다시 돌아온 두 번째 토요일 아침, 아내는 두툼한 장편소설 한 권을 들고 외출했다. 학교 다닐 때처럼 하루 내내 카페에 앉아 책 한 권 읽어보는 것, 그것 또한 아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아내는 현관을 나서기 직전, 예의 또 괜찮겠어?” 라고 물어왔지만, 그래서 나는 씨익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속으론 좀 얇은 책이면 안 되겠니, 시집도 좋은 게 많은데생각한 것도 사실이었다.(111p)

 

 

작은아빠, 동생들이 내가 말이 많다고 싫어하죠?”

나는 조카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지 않다고 동생들은 누나를 좋아한다고 동생들이 삐치는 게 더 문제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조카딸의 입에선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제가요, 우리 오빠 때문에 말이 많아졌거든요. 우리 오빠가 많이 아프잖아요. 제가 말을 많이 해야 우리 오빠가 다치지 않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나는 조카딸의 작은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말을 많이 하거라, 아이야. 말을 많이 하거라, 아이야. 온 세상이 너와 네 오빠를 도와줄 거란다. 나는 기어이 눈물까지 툭 흘리고야 말았다.(157-158p)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다니까.”

나는 아내의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부모로서 성장한 것이 아닌, ‘부모로서 착각한 것들이 더 많이 쌓여왔다는 것을, 그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241p)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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