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3

매일 대하는 그 많은 책들이 담고 있는 언어가, 단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들이 내 나날 속으로 전혀, 한치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스스로 돌연한 영감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헛된 언어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나날이 낡아가는 상상력처럼 그 깨달음도 서서히 왔습니다. 작가라는 사람들의 책을 읽을 때면 어찌 이리도 용감한가, 싶을 때가 점점 잦아졌습니다. 그 부류에 내 이름을 보태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훌륭한 소설도 없지 않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자각 정도는 제게 있었습니다. 물론 허망 했습니다. 요트 여행, 그 오랜 꿈이 좌절된다면 남편도 허무해지겠지요. 그렇지만 곧 잊고 살아갈 것입니다. 꿈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요.(29p)

ㅡ 서하진, <요트>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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