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20
안 읽어도 그만이었을 책이다.
비건에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고를 떠나서 감정적으로 설득하는 이런 종류의 글은 내가 좋아하는 글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을 존중하며 공장제 축산업의 폐해를 알리고 동물권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존중함에도 그것을 주장하는 방식이 거칠고 단순하며 감정적이라고 느껴졌다. 하나만 이야기해보자. 노예제와 육식의 문제를 동일 선상에 놓고 얘기를 하는데 종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하느냐에 따라 다른 문제겠지만ㅡ이건 여기서 얘기할 문제가 아니니까ㅡ 호모 사피엔스를 하나의 종으로 보고 같은 종끼리 차별하는 것과 서로 다른 종끼리 차별하고 학대하는 문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또 공장제 축산업의 심각한 폐해와 동물이 잔인하게 학대당하는 동영상이나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채식을 꿈꾸고 실천까지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도 지적하듯이 그런 식의 감정 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감정적 동요만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서 지속적인 실천을 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일회적인 시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껏 살아온 삶의 태도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방식으로도 납득이 가야 한다. 또 채식을 개인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실천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부분이 너무 나이브하다고 생각했다. 부유해서 시간이 넉넉한 사람들이야 뭔들 못하겠는가. 가난한 자들이 가공식품 위주의 저질 싸구려 음식을 많이 먹는 이유가 그저 돈이 없고 못 배워서 때문일까? 채식에 관심이 있고 그것을 실천할 근거를 찾고 싶다면 다른 책을 권한다.
우리 반 교실 뒤편에는 공용 연필깎이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여러 아이들이 멋대로 이용하다 보니 곧잘 고장이 나곤 했다. 보다 못한 담임선생이 안내문 하나를 써 붙였다. “학급 물품을 내 것처럼 아끼자!” 이 문구를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그때까지 내가 외국에서 받은 교육에 의하면 그 문구는 응당 이렇게 쓰여 있어야 했다. “남의 것처럼 아끼자.”
‘내 것’이라면 다소 소홀히 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남의 것’ 혹은 ‘우리 것’이라면 더 조심하고 아껴야 한다, 어린 나에겐 이것이 상식이었다. 혹시 잘못 써진 건가 눈을 씻고 살펴봤지만 아니었다. 과장이 아니라, 이 일은 어린 나에게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였고 앞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며 겪을 일들에 대한 경고 신호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누군가 ‘내 새끼’라는 말을 쓸 때마다 이 일화를 떠올린다. 우리 사회가 ‘남의 새끼’도 귀하게 대했다면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상상하면서.(11-12p)
많은 이들이 ‘육식=단백질=힘=건강’이라는 미신을 철석같이 믿는다. 덕분에 한국은 고열량 육류 섭취 습관과 관련이 높은 대장암 발병률 세계 1위를 기록했다.(30p)
문제는 더 많지만 이 정도로 하겠다. 이 7대 악이 일어나는 근본 이유는 한 가지이다. 우리의 세 치 혀,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습관 때문이다. 고작 그거다. 그래서 더 기가 막히다.(31-32p)
과연 그럴까? 인류의 육식을 둘러싼 문제가 그렇게나 명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고 언제든 먹는 것과 관련된 습관만 고치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사회의 지배적인 시각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처음에는 소수 의견으로 시작되는 생각이 점점 퍼지면서 사회 전체의 9퍼센트에 이른다고 치자. 이때까지도 이렇다 할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10퍼센트라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의견은 어느새 주류 사회의 의견이 된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성 의견이 10퍼센트만 되어도, 그 생각은 사회에서 주류적인 생각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43-44p)
김밥도 야채김밥이 가장 싸고, 피자도 야채피자가 가장 싸다. 마트에 가면 보통 육류나 해산물이 농산물 보다 비싸다. 식당에서도 고기나 스테이크, 생선 요리나 회가 비싸다. 비건이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은 안 해본 사람들이 갖는 편견이다.(101p)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제일 싼 음식은 가공식품이다. 어떻게 보관, 유지 등에 많은 시간과 품이 드는 신선한 재료와 무한정 사놓을 수 있는 가공식품을 가격비교 할 생각을 하는거지? 그리고 수도권은 그나마 선택권이라는 게 있지. 지방에서 매 끼니마다 비건 식재료를 준비하고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맞는 말을 하며 수긍을 하다가도 이런 식으로 후려치니까 더 거부감이 든다.
식물 중에 자극에 반응하는 식물도 있다. 미모사는 건드리면 움츠리고, 애기장대는 곤충으로부터 위협을 감지하면 독성 물질을 분비한다. 그러나 이는 고통을 인지했다기보다 자극-반응 메커니즘에 가깝다. 식물도 반응은 하지만 뇌에서 상황 판단을 해서 응답하지는 않는다. 가령, 끈끈이주걱은 파리든 담뱃재든 똑같이 반응한다. 소라면 동일한 자극을 줬을 때 먹을 것과 아닌 것을 판별한다. 이처럼 식물의 반응 기제와 동물이 뇌와 중추신경계를 통해 고통을 느끼고 대응하는 수준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물론 이것이 식물을 함부로 다뤄도 좋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현재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면 된다. 먼 훗날, 만약 식물의 고통을 증명할 수 있고, 식물을 먹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아마 가장 먼저 열린 마음으로 이 변화를 수용할 사람들도 비건이 아닐까 한다. 육식주의자들은 그때도 구실만 찾을 것이다.(146-147p)
ㅡ 김한민, <아무튼, 비건> 中, 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