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16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산시로, 그 후, 문으로 이어지는 소세키의 전기 3부작을 다 읽게 되었다. 완벽하게 이어지는 소설들이 아니고 각 작품들이 독립적으로 훌륭하지만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어차피 다 읽을거라면 저 순서대로 읽는 게 훨씬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이스케가 스스로 놋쇠가 되는 것을 감수하게 된 것은 갑작스레 엄청난 파란에 휘말려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심기일전하게 되었다는 등의 멜로드라마와 같은 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다이스케 특유의 사색과 관찰의 힘으로 스스로 조금씩 도금을 벗겨온 것에 불과했다. 다이스케는 그 도금의 대부분은 아버지가 덮어씌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금으로 보였다. 많은 선배들이 금으로 보였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두 금으로 보였다. 그래서 자신의 도금이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한시바삐 금이 되고 싶어서 안달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금으로 가려져 있던 다른 사람들의 바탕쇠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들여다보고 나니 갑자기 이제까지 매달려 왔던 것이 부질없는 짓으로 생각되었다.(99p)
“그럼 극히 고상한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지. 진부한 이야기지만,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어. 오다 노부...나가가 어느 유명한 요리사를 고용했는데, 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처음으로 먹어보고 너무 맛이 없어서 심한 잔소리를 했다는군. 요리사로서는 최상급의 요리를 만들었는데 야단을 맞자 그 다음부터는 적당히 이류 내지는 삼류의 요리를 주인에게 만들어주었더니 내내 칭찬을 받았다고 하네. 그 요리상의 경우를 보게. 생활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자신의 기술인 요리 그 자체를 위해서 일한다는 점으로 봐서는 매우 불성실한, 즉 타락한 요리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108p)
영웅의 명성이란 그만큼 변화무쌍한 것이다. 그건 결국 대부분의 경우 영웅이란 그 시대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인 고로, 이름만으로는 대단한 것 같지만 본래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중요한 시기를 넘기면 세상은 그 자격을 점점 빼앗으려 든다. 러시아와 한창 전쟁 중일 때야 폐색대란 중요한 것이었지만, 평화를 되찾은 새벽이 되면 백 명의 히로세 중령도 완전히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세상은 이웃 사람에 대해 아주 타산적이지만 영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251p)
그는 원래 태도가 불분명한 편이었다. 누구의 명령도 그대로 따른 적이 없는 대신에, 그 누구의 의견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저항해 본 적이 없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약삭빠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처럼 보이기도 하는 태도였다. 그 자신조차도 그 두 가지 비난 중 어느 쪽을 들어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주된 원인은 약삭빨라서도 우유부단해서도 아니고 오히려 그가 융통성 있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이제까지 외곬으로 돌진하려는 용기를 상실하곤 했다. 그래서 다가가지도 물러나지도 않은 채 그대로 현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현상을 유지하려는 그의 태도가 생각이 부족해서가아니라 오히려 명백한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가 평소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과감한 태도로 신념을 밀고 나갈 때 비로소 자각할 수 있었다. 미치요와의 경우가 바로 그 적절한 예였다.(304p)
ㅡ 나쓰메 소세키, <그 후> 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