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17
향기에 반하는 것은 향기를 피워올린 그 순간뿐이고, 술맛에 감동하는 것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찰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충동에도 그와 같은 순간이 존재한다고 믿네. 별다른 감정 없이 그 단계를 지나 상대에게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친밀함은 느껴지지만 이성을 향한 촉각은 점점 마비되는 것 아니겠나.(190~191p)
자네, 아직도 기억하는가? 내가 언젠가 자네에게 이 세상엔 나쁜 사람이라고 정해진 인간은 없다고 한 말을. 대부분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한순간에 나쁜 사람이 돼버리니 방심하면 안 된다고 한 말을 말이네. 그땐 자넨 내가 흥분하고 있다고 지적했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선량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하냐고도 물었지. 내가 한마디로 ‘돈’이라고 대답하자 자넨 영 석연찮다는 표정을 지었잖나. 나는 그때의 자네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네. 지금에서야 털어놓네만, 그 말을 하면서 난 작은아버지와의 일을 떠올렸던 거야. 내 대답은 ...사상 문제를 깊숙이 탐구해 나가려는 자네가 듣기엔 시시했을지도 모르지. 너무 진부한 대답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냉철한 두뇌로 새로운 발견을 입에 담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원리를 이야기하는 편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네. 피가 돌아야 몸이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야. 진실을 담은 말은 의미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보다 강한 힘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지.(196~197p)
술은 끊었지만 일을 할 생각은 없었지. 일이 없으니 다시 책을 펴드는 수밖에 없었네. 하지만 끝까지 독파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책을 덮기 일쑤였지. 아내는 가끔씩 내게 그렇게 공부를 해서 뭘 할 거냐고 물었네. 나는 슬쩍 웃어 보이기만 했어. 하지만 속으로는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날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했지. 이해시킬 방법은 있지만, 이해시킬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슬퍼졌네.(331p)
ㅡ 나쓰메 소세키, <마음> 中, 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