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21
“그럼 시는 구원할 수 있나요?”
어떤 독자가 물었다.
“아뇨,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절벽에 매달려 있어요. 간헐적으로 돌부리 같은 게 생겨서 거기에 발을 얹은 채 매달리거나, 아니면 한 뼘 크기의 바닥이 생겨서 거기에 발을 올려 놓기도 하는데, 시가 그 돌부리나 바닥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구원이 아니고, 죽기 직전 상태가 지속되도록, 그러니까 죽지만 않도록 생명을 보전해줘요. 딱 그 정도만.”
(...)
시는 구원이 찾아올 때까지 시간을 끕니다. 그게 시라는 놈이 잘하는 짓 같아요.(6p)
어떤 것이든 극에 달하면 그 끝에는 슬픔이 있다고 했다. 즐거움도, 기쁨도, 원망도, 고통도, 재미도.
변기에 앉아 일기를 쓰면서 지금 이 슬픔의 끝이 행복을 끌고 가서 만난 슬픔인지, 고통을 끌고 가서 만난 슬픔인지 별로 상관이 없을 정도로 마지막에는 슬픔만 남았다.(98p)
문득, 몇 년 전 친구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누굴 걱정하자 친구는 내게,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거냐고 물었다. “사랑에 빠지면 나는 나를 걱정해.” 나는 대답했었다.
한때, 너무 망가지기 전에는 나도 누군가를 걱정할 줄 아는 인간이었던 것이다.(116p)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은 반만 참이다. 시간은 독이고 시간을 약이기 때문에. 시간은 양날의 칼같이 무서운 놈이다. 뱀에 물렸을 때는 시간이 약이 아니다. 방치는 독이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방치하면 시간이 상처를 곪게 한다. 병원을 가고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운동해라, 샤워해라, 라는 말은 방금 뱀에게 물린 사람에게 운동하면 나을 거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124p)
얼그레이 잼 덕분에 문득 행복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오셔서 행복인지 못 알아뵀다. 그래서 악수를 하려고 했는데 웬일인지 내 악수를 받아주셨다. 그래서 악수를 한 김에 내 오른손과 행복의 왼손을 수갑으로 채웠다. 같이 걸었다. 그런데 어느덧 혼자 걷고 있었다. 행복은 손목이 너무 가늘어 수갑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128-129p)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확신이 있었으며, 이 말을 하는 것이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 때문에, 이 망할 문학 때문에, 세상의 극소수 사람들하고만 개그 코드가 맞는 인간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착하고 선량한 내 주변 사람들과는 사랑에 빠질 수도 없어진 거야, 그래서 내가 웃지 못하는 거야, 라는 말 또한 하지 못했다.(172-173p)
피자를 바라면 피자가 늦게 오듯, 나 자신을 희망에서 구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하기. 희망은 희미하고 가늘고 어렴풋할 때 가장 근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곁눈질로 희망하기를 시전하려고요.(198p)
ㅡ 문보영,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中,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