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9

 

 

 

“그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뭐?”

“그게, 그러니까 엄마 말은, 그 사람하고 결혼해도 되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는 거지.” 엄마는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저녁으로 샌드위치든 수프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툭 던졌다.

“엄마 지금 그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이야?” 내가 물었다.

“아니, 그 사람은 좋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다만 곰곰 생각하다보니까, 결혼식을 취소하는 것도 강행하는 것만큼이나 별 거 아니라는 걸 너한테 얘기해주고 싶었어.”(33-34p)

 

 

“어허이.” 그가 말했다. “몇 달 동안 나한테 꼬리쳤잖아. 아니라고 하지 마.”

“소가 웃을 소리!”

“여자가 나한테 꼬리칠 때를 난 놓치지 않아. 난 그쪽으론 보통 틀리는 법이 없어.”(49p)

 

 

누가 ‘짐작한 그런 일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거의 틀림없이 짐작한 바로 그 일이다.(64-65p)

 

 

“아니지, 엄마는 머리가 잘 돌아가니까 절대 ‘뚱뚱’하다는 말은 안 해ㅡ내 체중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뿐이지. 바른 먹거리를 먹었는지, 물은 마셨는지 확인하고. 원피스 몇 벌이 좀 조이는 것 같다고 지나가듯 말하고.”

(...)

“엄마가 맨날 자기 몸매에 신경쓴다고 해서, 어마가 디저트는 절대 세 입 이상 안 먹는다고 해서, 엄마가 미친 사람처럼 운동한다고 해서, 내가 엄마랑 똑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67-68p)

 

 

“딴건 다 못해도 자식 하나만은 똑소리나게 키운 줄 알았는데.”(81p)

 

 

“너는 아비바를 너무 친구처럼 대했어. 부모 노릇은 못하고.”(95p)

 

 

그 남자는 집단 괴롭힘에 반대한답시고 미사여구(포괄성, 안전 환경, 불관용)를 늘어놓지만, 내 단언하는데 실제로 그는 모든 게 다 루비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끔 루비가 좀 조심만 하면 모두가 편할 텐데요.(136p)

 

 

“그거 알아요? 남자의 구십 퍼센트가ㅡ사람의 구십 퍼센트인가? 기억이 안 난다ㅡ마주 걸어올 때 길을 비키지 않는대요.”(142p)

 

 

사람들은 종종 결혼식까지 가는 몇 달의 여정 동안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끔 그 최악의 모습이 본모습인 경우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이르기 전까진 알기 어렵다.

(...)

“물어볼 수도 있고, 말해줄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건 남의 사정이야. 네가 알 권리가 있는 과거는 오로지 너 자신의 과거뿐이야.”(148-149p)

 

 

“하지만 내가 웨스에 관해 틀렸다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겠죠.” 프래니가 말했다.

“안 그래요.” 내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실수한 거라고 해도 돌에 맞아죽지 않아요. 당신 가슴에 주홍글씨로 ‘이혼녀’라고 새길 리도 없고요. 당신은 21세기에 살고 있어요. 변호사를 불러서 당신이 왔던 그대로 싸들고ㅡ아니면 뱉어내고ㅡ나오면 되고, 원래 쓰던 성으로 되돌리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로 시작해도 돼요.”(158p)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과거는 절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바보들만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162p)

 

“오늘 파티에 올 수 있어?” 엠베스가 물었다.

“네, 당연히 가야죠, 레빈 부인. 빠질 순 없죠! 제가 직접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상의는 빨간 코르셋이고 하의는 검정 후프 스커트예요, 그리고 앙증맞은 검정 레이스 반장갑을 낄 거고요, 머리는 하나로 묶어 틀어올리고 조그만 베일을 쓸 거예요. 굉장히 드라마틱하겠죠.”

“그런 것 같네. 내 장례식 때도 그렇게 입고 오면 되겠다.”(234p)

 

 

운전사는 백미러로 그녀를 힐긋 쳐다봤다. “그래서 아는 얼굴 같다고 한 건 아니고. 이혼한 아내의 언니하고 닮았네. 성질은 개같았지만 침대에선 끝내줬지.(280p)

 

 

당신은 절대 그와 싸우지 않는데, 왜냐면 당신도 알다시피ㅡ당신의 마음 한구석은 알고 있다ㅡ만약 당신이 뭐라도 하나 큰소리를 내면 그는 당신과의 관계를 끝낼 것이다. 당신은 힘이 없고, 모든 힘과 권한은 그에게 있다. 그래서 때때로 당신은 절망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에게 키스했다. 그건 당신의 권한이었다, 안 그런가?(327p)

 

 

다들 매트리스에 매달린 여자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미워하면서), 아무도 폭풍우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참 희한하다고, 당신은 생각한다.(350p)

 

 

어릴 때 좋아하던 <끝없는 게임> 시리즈를 읽는다. 당신은 더 이상 그 책의 타깃 연령층이 아니지만, 그해 여름 당신은 그 게임북에 완전히 빠져든다. 게임북을 보면 당신은 각 장면의 말미에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고, 그 선택에 해당하는 페이지로 넘어간다. 이 얼마나 인생과 흡사한가.

다만 <끝없는 게임>에서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결말을 알고 싶다면 뒤로 다시 돌아가서 다른 것을 선택하면 된다. 당신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삶은 가차없이 앞으로만 흘러간다. 다음 쪽으로 넘어가든가 그만 읽든가 둘 중 하나다. 읽기를 그만두면, 이야기는 끝난다.(359p)

 

 

 

ㅡ 개브리얼 제빈, <비바, 제인> 中, 루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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