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5
일련의 일들 때문에 후반부 200p 정도는 몇 달이 지나서 읽었다.
이 알베르라는 친구는 너무도 선의로 가득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에두아르는 그를 책망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약간의 앙금이 있었다. 결국 그를 구하려다가 지금 이 꼴이 돼버린 것 아닌가. 전적으로 자의로 한 일이 맞긴 하지만, 글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을, 이 억울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모두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상황을 책임져야 했다.(120p)
제대병들은 항상 이렇다니까! 끊임없이 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뻐겨 대고, 언제나 모든 사람들을 훈계하려 들지. 이제는 그놈의 영웅들이 슬슬 지겨워진다니까! 진짜 영웅들은 전사했어! 미안하지만 그 사람들이야말로 영웅들, 진짜 영웅들이라고! 그리고 말이야, 어떤 친구가 참호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너무 떠들어 대면 의심해 보는 게 좋아. 그중 대부분은 전쟁 내내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냈을 거니까.(201p)
그는 항상 누군가의 우아함을 그가 얼마나 멋진 구두를 신었나를 보고 판단해 왔기 때문이다. 낡은 정장이나 외투는 용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멋은 그의 구두로 평가되는 법,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해야 했다. 그가 산 구두는 밝은 갈색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이 구두를 신는 것만이 이 소동 가운데서 느낀 유일한 기쁨이었다.(300p)
처음에는 계획의 성공으로 인한 엄청난 기쁨이었던 것이 곧ㅡ두 남자에게 서로 다른 이유로ㅡ어떤 기이한 차분함으로 변했다. 이루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기대했던 것만큼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느껴지는 어떤 중요한 과업을 끝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차분함 말이다.(512p)
궁핍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어디에나 따라다니면서 삶을 직조하고, 삶을 완전히 결정해 버린다. 그것은 매순간 당신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당신이 무엇을 하든 더러운 액체처럼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궁핍은 오히려 극빈보다도 나쁜 것인데, 왜냐면 폐허 속에서도 위대함을 간직할 수 있는 반면, 부족함은 당신을 쩨쩨함과 치사함과 비열함과 인색함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을 비천하게 만드는 바, 왜냐면 그것 앞에서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게, 자긍심과 존엄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536p)
ㅡ 피에르 르메트르, <오르부아르>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