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9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적인 인상과 대화만으로 사람을 혐오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럼에도 혐오스런 인간을 보면 그게 내 맘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각자의 사정을 내가 다 고려할 수가 없으니, 계속 의식하며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야겠지.

이 책을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나 인간의 존엄, 특히나 나이든 어른을 어떻게 대할지 생각해본다. 경비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다소 낭만적인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내가 은퇴한 후, 노동이 꼭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막막함에 공포가 느껴지기도 했다.

 

ps. 현대조선 잔혹사, 웅크린 말들, 소금꽃 나무, 그의 슬픔과 기쁨 등의 책을 찾아보기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122p)

 

 

어느 시인은 “가난은 순간적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지만 이 시대의 가난은 순간적이지 않아 보였다. 보통은 대물림되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늪’이 되는 것 같았다.(150p)

 

 

아직 동트지 않은 거리로 나오는 첫차의 승객들은 항상 똑같다. 이 도시의 새벽을 깨우는 경비원 할아버지들, 미화원 할머니들이다. 매일 마주치니까 서로 얼굴을 안다. 그래도 인사를 건네지는 않는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많아도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고단함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침묵이 곧 위로이고 말없는 응원이다.(195p)

 

 

숙소에는 이불 말고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여럿이 자는데, 한 사람이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열면 삐꺽 소리에 다들 깨고 만다. 겨우 잠이 들어도 무전기 소리에 금방 잠이 깬다. 취침 시간에도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해서 잘 때도 무전기를 켜놓기 때문이다. 또 입·출구 초소에서는 안팎 조명을 다 켜놓고 자야 한다. 이곳의 밤은 무전기 소리, 지하 주차장을 들고 나는 차량의 소음, 오토바이 굉음이 늘 함께였다.

자다 보면 다른 사람의 발이 내 배 위에 올라와 있기도 했다. 천식을 마른기침이 끊이지 않는 사람, 코를 고는 사람과 같이 잔다는 것은, 잠 안 재우는 고문에 가까웠다. 군대와 감옥을 제외하고 여러 명을 한 방에 재우는 곳이 또 있을까? 그건 바로 경비원 숙소였다.(216p)

 

 

나는 38년 직장 생활을 통해 조직과 상사에 충성을 다하도록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퇴직 후 경비원을 시작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스마트폰을 없애고 통화만 가능한 핸드폰으로 바꾼 것이었다. 경비 업무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취침 시간에도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경비복은 항상 입고 잤다.

터미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터미널의 한 식구라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런 자긍심이 없으면 견뎌 내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격무였다. 손님이 없어 고속버스가 텅 비어 들어오는 것을 보면 회사를 걱정하며 어떻게 하면 버스를 많이 타게 할 수 있을까 궁리했다. 타지에서 올라와 고속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최종 목적지로 가는 시내버스 노선을 경비원에게 자주 물었는데, 나는 승객들에게 대답해 주기 위해 이 도시의 시내버스 노선을 모두 외웠다. 터미널 문화관에서 하는 공연스케줄과 갤러리의 미술전시회 내용도 미리 숙지해 뒀다 답해줬고, 주차장의 주차 요금표도 외웠다. 외국인들을 대하기 위해 자주 물어 오는 것들을 러시아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정리해 익혔다. 터미널에 근무하는 동안 월급 값은 하고도 남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터미널고속에게 나는 언제든지 새로 구할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다.(246p)

 

 

질병 휴가란 시급의 일터에는 없는 말이다. 더 이상 일을 못 시키겠다고 판단되면 바로 권고사직을 시킨다. 이것이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뼈마디와 근육이 튼튼한 사람을 새로 구한다. 일할 사람은 항상 널려 있다.(248p)

 

 

ㅡ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中,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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