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6
다음은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처음에 나는 그의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버는 돈이 많은데 왜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까? 그 안의 시스템은 바깥세상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계산법과 달랐다. 30일간의 일을 채워야 돈을 벌 수 있고 그중 하루라도 기본 테이블을 채우지 못하면 그날은 계산일에서 빠진다. 선불금을 받게 되면 우선 그 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급여에서 빠지는데, 그러면 생활비가 부족해서 다시 가불 형태로 돈을 받고 이런 식으로 일종의 빚이 계속 쌓였다고 했다. 업소를 옮기게 되면 다시 소개비와 여러 필요 비용이 발생해 빚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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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선업자들이 미성년 성매매 여성에게 유사 가족의 호칭을 쓰는 것은 당연히 용이한 통제를 위해서다.(93-94p)
꾸준한 선호 직업군으로서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에 뛰어드는 시대에 공무원들이 어렵게 얻은 직장을 잃을 것도 두려워 않고 성매매 사업에 다리를 걸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매매 알선이 그만한 위험쯤 무릅쓸 만큼 돈이 되고 심지어 권력이 되며 또한 이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공권력이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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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직군의 사람들이 성매매 알선에 나서는 것은 손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개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포주와 공모하고 조직 폭력 단체부터 현직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성매매로 기꺼이 이득이 취한다. 한편에서는 사채업자가 다른 한편에서는 무당이 성매매를 종용한다. 한국 사회의 온갖 자리에서 이들은 성매매 알선에 각자의 권력을 사용하고 이로써 부를 축적하고 있다.(98-99p)
대한민국 법은 이러한 여성들의 존재를 명문화하고 있다. [식품위생법 시행령]에는 유흥종사자를 둘 수 있는 시설로 ‘유흥주점’을 규정하고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인 유흥접객원을 말한다.”고 되어있다(제22조). 한국사회의 독특한 영업 형태이며 속칭 ‘룸살롱’으로 대표되는 유흥주점은 유흥과 접대를 위한 대표적 공간이다. 보건복지부 [성매개감염병 및 후천성면역결핍증 건강진단규칙]은 식품위생법의 유흥접객원과 티켓다방 종업원, 안마 시술소 여성 종업원을 대상으로 한다. 대상자들은 매독, 임질 같은 성병을 타인에게 감염시킬 우려를 가진 자들로서 의무적으로 정기검진을 받도록 되어 있다.
국가가 직접 공창을 관리해가며 성매매를 인정하는 구시대적 유물을 우리는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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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유곽과 함께 들어온 과거의 유흥 접대에서 유흥은 분명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이 같은 방식의 접대는 어쩌면 한국 경제가 대외 의존적이던 긴 시기 동안 갑질에 휘둘리며 외세에 조아렸던 수많은 이의 상처였을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독재 정부는 그들의 정치적 불의를 덮기 위해 ‘이제 너희들도 즐길 수 있다’고 속삭였고 그 시간들을 지나 현재 한국의 일반 남성은 성 착취의 주역이자 공모자가 되었다.(104-107p)
성매매를 노동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성매매를 합법적 계약으로 인정하고 제도로서 보장하면 오히려 폭력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계약 조건은 ‘콘돔을 낀다’‘입에 사정하지 않는다’등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지키고 정해진 체위만 할 것 등을 미리 약속한다 해서 성매매가 안전하고 할 만한 것, 폭력이 아닌 정당한 노동 행위가 될 수 있을까? 보아온 수많은 실제 사례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계약 조건은 누가 만드는가. 성매매 여성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건 환상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성매매 여성이라고 하면 강남의 텐프로 같은 업소에서 손님을 가려 받고 평소 사치를 하며 화려하게 지내는 모습을 떠올린다. 원하지 않는 행위는 까칠한 태도로 거절하며 모든 남성을 눈 아래 두는 어떤 여성을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 성매매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 행위에 가깝다. 여성이 노동자가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고 일정 가치를 기대하는 구매자들이 존재하며 그 기대를 배반할 때 가차 없이 훼손당하고 버려지는 이 과정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 존중되지 않는다.(148-149p)
이런 선불금은 종류도 다양하고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쌓여버리기 때문에, 여성 개인이 이런 구조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성매매를 시작했거나 금세 현실을 파악했다 해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누군가는 자신만 잘하면 혹은 조금만 견디면 스스로 문제르르 해결하고 성매매를 그만둘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이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현장의 증언들에 따르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자신의 선불금을 충분히 갚고 나올 수 있겠다는 계산으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동료의 선불금에 연대보증을 서게 되고, 며칠 동안 앓아눕는 바람에 결근비가 쌓이며, 구매자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테이블비를 덤터기 쓰거나 이런 지출로 인해 월세 낼 돈이 부족해 일수를 찍게 된다. 도처에 함정이 도사린 이 시장에서 빚은 빠르게 불어나며 나중에는 그 금액조차 불투명해진다. 본인이 직접 채무자인 경우에는 갚은 금액이라도 알 수 있고, 불법원인급여에 의한 무효로 주장하기도 용이하지만 함께 일하는 여성들 간에나 가족이나 친구들을 연대보증한 경우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런 식으로 생존하는 동안 그만두리라는 결심은 자꾸 지연되고 대다수가 곧 그 미래는 오지 않으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성매매로 유입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조건들에 더해 이 ‘일’로 얻은 피해가 더해져 시간이 갈수록 이들을 둘러싼 굴레는 점점 더 촘촘해지는 것이다.(155-156p)
빈곤하고 자원이 없는 채 아동-청소년기를 보낸 여성들에게 사회는 안전망을 제공하는 대신 정글에 버려진 먹잇감으로서 그들을 맞는다. 취약 계층 여성 청소년은 젠더 폭력에 의해 고립된 채 안전망이 전무한 생활을 전전하다가 거리에서 다시 성폭력에 노출되고 마침내 성매매 업소를 그나마 동료가 있는 안전한 곳, 폭력은 동일하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절망적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성매매가 유일한 선택지가 되지 않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성매매 시장은 상대적으로 더 빈곤하고 더 취약한 여성들로 채워진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합법화된 성매매 시장이 자국에서 공급되지 않는 여성들을 이주여성으로 채우는 것처럼 한국도 이미 그렇다. 성매매 여성 개인을 악마화하고 지탄하며 왜 성매매를 하느냐 여성에게 묻는 것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다. 거대한 성매매 시장을 어떻게 줄여나가고 이 구조 자체를 바꿔나갈지를 물어야 한다. 아니 답해야 한다.(165p)
2018년, 여성 인권을 고려하는 맥락으로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들의 성매매 실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독일과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그리고 목격한 현장은 각종 매체와 연구를 통해 보고 듣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우선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화려한 생활로 주목받는 성매매 알선업자들이었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대형 성매매 업소 포주들은 성공적 사업가로서 자서전을 출간하고, 이들이 성매매 알선업소 운영을 컨설팅해주는 리얼리티 쇼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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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할 만큼의 재력과 전방위 로비스트가 될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포주들’은 정계로 나아간다.(176p)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들의 모습을 보면, 한번 성매매 합법화를 하게 되면 다시 되돌아오기란 지극히 어려워진다는 걸 알게 된다. 일제 강점기 이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던 2004년까지 국가가 조장해온 한국의 상황에서도 이미 우리는 배웠다. 이미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성매매 시장이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자체가 되며, 여성들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그 시장 안에서 권력층의 부패와 비리와 유착이 이루어지고, 남성들의 관념 속에서 섹스는 성매매를 기준으로 치환된다.
성매매를 ‘자유’라는 말로 포장한 나라에서 그 시장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는 이미 독일과 네덜란드의 현재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매매 여성의 권리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성 노동을 낭만화하며 독일과 네덜란드를 추종할 만한 사례로 꼽기도 한다. 그러한 주장을 단지 하나의 의견으로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성매매가 합법화된 사회에서 그로 인해 벌어들인 자본을 포식하는 알선업자들이 그런 주장의 뒤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동의를 당당함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성 구매와 알선의 폭력적 본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성매매 안에서 인간 여성의 존엄은 없다. 성매매를 긍정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일한 것은 이들이 언제든 돈만 내면 사용할 수 있는 육체로서 준비된다는 것뿐이다. 성매매 합버화는 성 구매를 당당한 소비로 만들고 포주를 자랑스러운 사업가로 만들어주었다.(184p)
‘여성들이 성을 판매할 권리’만이 보장되는 이곳에서 그들은 포주들의 경쟁 속에 점점 저렴해지고 더욱 노골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다가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능동적 성 판매자로 상정하는 허울 좋은 인식은 실제 여성들이 경험하는 착취와 학대를 개인 선택의 결과로 만든다. 그로 인해 성매매 여성이 안게 되는 트라우마는 ‘할 만한 일’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며, 여성 자신 역시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성매매가 법적으로 전혀 문제되지 않는, 오히려 자랑스러운 ‘사업’인 나라에서 모든 문제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성매매 여성 개인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187p)
우리 사회는 성매매를 통한 지배에 지극히 길들여져 있다. 불법적 이권을 챙겨온 거대한 알선 조직과 연결된 채 삶을 유지하는 이들이 잔뜩 버티고 있는 까닭이다. 성매매를 통해 부와 권력을 얻은 자들이 군림하는 사회는 인간의 몸을 착취해 돈을 버는 일에 모두를 공모자로 만든다. 반복하지만, 한국은 이 좁은 땅덩이로 전 세계 6위의 성매매 국가다. 성매매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217p)
무엇보다 성매매가 사생활의 영역이며 성인 간 자발적 거래라는 주장에는 성매매로 넘쳐나는 현 시대를 너무도 순순히 믿는 성 구매자의 가장된 무지가 엿보인다. 마치 자발적 성매매 여성과 강요된 성매매 여성을 자신들이 잘 구별할 수 있고 우리 사회에 더 이상 강요된 성 판매는 없으리라는 듯 태평스러운 확신이다. 한국 성매매 역사에서 이런 주장들은 매순간 등장했다. 일제가 이식한 공창제를 없애자는 주장이 비등할 때도 언론은 ‘아무런 생활 수단도 배운 것도 없는 성매매 여성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성적으로 소외된 남성 계층의 성적 욕구는 어찌할 것이냐’고 걱정했다. 독립 후 빈곤 속에서 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강요된 자발’의 구조가 확연히 드러났음에도 그러한 주장은 한결같았다. 더러 발생하는 문제들은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함께, 영향력을 가진 지식인 남성들의 당당한 목소리로 수십 년간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실질적 노력으로 이어졌던 적은 없다. 단지 언제나 성매매는 힘 있는 남성들이 즐기고 누려야 마땅한 멋진 세상이었을 뿐이다.
성매매 여성의 ‘자발성’을 이유로 성매매 시장을 자유롭게 놓아두자는 주장, 그로써 성매매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고 착취가 사라지리라는 망상을 말하지 말자. 그러한 시장은 없다. 2년 전 인신매매되어 성 판매자가 된 여성이 다른 대안이 없어 성매매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여성의 행위는 자발인가 강요인가. 돈을 벌기 위한 ‘일’은 모두 착취와 노동의 경계로 오간다. 그를 구분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노동법을 만들어놓고도 늘 불안정과 착취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 성격부터가 착취적인 성매매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성매매가 인간의 권리, 즉 인권과 관련된 것이라면 우리는 이 문제를 그렇게 쉽게 경제적 이슈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226-227p)
성매매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계급 구조를 집약한 거대한 착취의 시장이다. 성별과 자본과 인맥으로 인간의 급을 나눠 위력을 행사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산업이다. 이 폭력에서 자유로운 사회 구성원은 없다. 인권과 평등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이 거대하고 뿌리 깊은 폭력의 실체를 직시하기는 어렵지 않다. 성매매는 특수한 별개의 현상이 아니다. 성매매에 대해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내가 속한 이 사회를 알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의미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239-240p)
ㅡ 신박진영,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中, 봄알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