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1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 내러 돌아온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로 일하면서 30년 동안 332명이 넘는 여자 선수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래리 나사르에게 법정에서 피해자가 한 말이다.(96p)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는 점점 많아지는데 사법부는 여전히 가해자의 정신 질환을 들먹이고 그들의 미래를 염려한다. 서울역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삼십대 남성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가해자 김씨 역시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되어 감형됐다.
여성에게는 당장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검찰은 가해자의 영장을 기각하고 재판부는 형량을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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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예방하는 일은 여성들 각자의 일이 될 수 없다. 여성 혐오범죄의 해결은 국가의 일이다.(106-107p)
오토바이를 탄 누군가 지나가면서 당신의 가방을 휙 채갔다.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경찰에 신고한다”가 일반적인 답변일 것이다. 경찰을 찾아간 당신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다. “가방을 도둑맞았어요!” 여기서 경찰이 가방을 도둑맞은 당신에게 “그러게, 가방을 잘 간수했어야죠”라며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가방을 훔쳐 간 사람이 잘못했으니까. 근데 성범죄 피해에 한해서만은 유독 사회의 인식이 엄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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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한 행동이 상식에 부합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성범죄에 한해서는 ‘피해자로서 완벽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보호하겠다는 인식은 틀렸다. 피해자의 말, 글, 행동을 평가하여 합격 조건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난하고 의심한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인식 때문에 성범죄 피해자는 세상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당할 만해서 당하는 피해자는 없다. 이 부분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하지 못하겠으면(설혹 싫더라도) 그냥 외웠으면 좋겠다.(263-264p)
ㅡ 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中, 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