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31

 

읽다 만 명암을 다시 읽기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

 

 

마쓰네는 그래 봬도 꽤 사랑스러운 남자야. 거기다 귀족 집 자제라 고상한 구석이 있지. 하지만 머리는 썩 좋지 않다네. 그리고 쉽게 욱하지. 그래서 시호다와는 맞지 않는다네. 나는 개의치 않지만. 마쓰네가 하이칼라였다면 벌써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 걸세. 숙부가 백작이고 미쓰이와 친척 사이인데도 월급 30엔을 받으며 아등바등 빠듯하게 사니 참 이상한 일이지. 그리고 그는 아주 느긋한 남자라네. 남의 집에 놀러 와 눌러앉아선 밥때가 되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밥을 먹는다네. “오늘도 어쩌다 보니 얻어먹게 되네요”라거나 “감사합니다.”같은 말은 한 적이 없지. 꼭 자기 집에서 밥을 먹는 양 굴어서 그런 점이 참 좋다네.(246p)

 

 

저는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습니다. 좋아한 적도 없지요. 그러나 당신이 저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저도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머리의 논리임과 동시에 마음의 논리입니다.(351p)

 

 

나는 의식이 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그 의식이 나의 전부라곤 생각지 않네. 죽은 후에도 나는 존재하고 심지어 죽은 후에야 비로소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지. 현재의 나는 자살을 선호하지 않는다네. 아마 내 명만큼 다 살고 가겠지.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느 인간처럼 나의 태생적 약점을 발휘할 걸세. 그게 생이라고 믿기 때문이네. 나는 생의 고통을 혐오함과 동시에 억지로 생을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지독한 고통을 혐오한다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은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죽음을 택하는 것은 비관이 아니라 염세관일세. 비관과 염세의 차이는 자네도 잘 알겠지. 나는 이 점에 관해 다른 사람을 설득할 마음이 없네. 즉, 자네 같은 사람을 내 힘으로 석득해 내 의견에 동의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말일세.(382-383p)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물건으로 받고 싶지는 않네. 물건이라면 상대의 호의가 내게 전해지는 것, 다시 말해 내 취향을 잘 이해한 것을 받고 싶은데 상대가 그걸 알 리가 없으니 결국 빈손으로 오는 게 더 나은 셈이 되지. 아니면 전병 한 봉지 정도가 오히려 더 좋다네(그 이유는 귀찮으니 생략하겠네).(388p)

 

 

짓궂게 굴기 위해 이런 말을 쓰는 게 아닙니다. 불평도 아닙니다. 다만 모처럼 알게 된 당신, 아름답고 좋은 면이 많은 당신에게 냉담해지기 싫어서 계속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도중에 관계가 끊어지는 게 싫어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당신과 한 달간 교류하며 당신의 재미있고 친절한 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윤리상의 인격 면에서 우리는 특별히 서로를 감화시키지 못한 채로 헤어진 것 같군요. 그래서 이런 의문이 자연스레 마음속에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당신이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저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반대로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되겠지요. 거기가 아슬아슬한 지점으로, 그때 서로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어 나쁜 쪽이 잘못을 뉘우치고 선한 쪽으로 마음을 바꾸어 사과하는 것이 이격의 감화라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기억이 안 난다는 당신 말을 믿을 수가 없고 역시 시치미를 떼는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니, 당신의 덕이 저를 감화시킬 정도가 아니고 저 또한 당신을 감화시킬 만큼의 힘을 가지지 못한 셈입니다. 친애하는 사람과 이런 중대한 면에서 교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이건 다이토모의 여주인 다카 씨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 다카 씨에게 평범한 벗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요릿집 여주인 눈에 세상 물정 모르는 촌뜨기처럼 보인다면 그뿐이지만, 모처럼 친해진 당신과 그런 경박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주절주절 이런 말을 늘어놓는 겁니다. 저는 당신의 선생도 아니고 교육자도 아니니 냉담하게 적당히 인사나 하고 지내면 수고를 덜 수 있어 편하겠지만, 왠지 당신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인품 밑바닥에 선량하고 좋은 것들이 숨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이런 촌스러운 말을 하는 것이니 기뿐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아주십시오.(394-395p)

 

 

 

ㅡ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中, 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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