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5
내가 지닌 결함으로 인해 도리어 타인의 빈틈을 한층 세심하게 알아차리고 보듬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싱그러운 젊음의 틈새에 숨어든 몇 안 되는 그늘진 얼굴들을 누구보다 먼저 찾아내어 다독일 거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날 수업에서의 돌발 상황은, 저 다짐이 어디까지나 적당하고 안전한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했음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테두리를 부수고 들어온 한 학생의 거센 말과 돌출 행동에 나는 몹시 당황했고, 이내 화가 났으며, 종국에는 강의실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그게 빈틈임을 알아차리고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그늘을 보고서도 다독일 마음을 더는 갖기가 어려웠다.(42p)
그러니 지속되는 관계 속에서 때론 상대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당신의 길을 그대로 걸으며 시간의 선물에 신뢰를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86p)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향한 즉각적인 연민은 너무나 얕아서 저렇듯 세 번을 넘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몇 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타인을 위해 기도했던 그 아침의 몇 십 분이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없는 세상보다는 따스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얕음을 부끄러워하되 마음 자체에 대해서는 냉소하지 않으려 한다. 성자가 아닌 내가 ‘고아와 과부의 얼굴로 온 타자’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은 참으로 작고 비루할 테지만 매번 조금씩 더디게 지치기를. 다음에는 세 번째 아닌 네 번째에, 그다음엔 다섯 번째에. 그렇게 생을 통해 “연민은 더디게 지친다”는 명제를 만들어가고 싶다.(96p)
지도교수가 아무리 자상해도 부모일 수 없고 선배들이 아무리 다정해도 친언니 친오빠는 아니니, 그 애착은 필경 너를 실망시키고 공허하게 만들 거라고 했다.
(...)
그 애착은 과연 찰나적이었지만, 나를 실망시키거나 공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167p)
ㅡ 이소영, <별 것 아닌 선의> 中, 어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