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3

 

 

뇌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담았다고 하길래 내심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이미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저자의 출간 의도가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최신 뇌과학의 연구성과를 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쉬운 책을 쓰고자 한 것이니 불평할 건 없겠다. 앞 절반 정도는 꽤나 좋았고, 5, 6, 7강은 좋은 이야기긴 한데 크게 흥미로운 얘기는 아니었다. 시간이 나면 같은 저자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데이비드 이글먼의 ‘브레인’을 들춰봐야겠다.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상상도 아니다. 창의성이나 공감도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것이다. 당신의 뇌는 음식이나 보금자리, 애정 또는 물리적 보호와 같이 좋은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지속해서 당신의 에너지를 투자한다. 그렇게 해서 자연의 필수 과업, 곧 당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31p)

 

 

과학자들은 최근 모든 포유류의 뇌가 단 하나의 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파충류와 다른 척추동물들도 같은 계획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포유류의 뇌를 형성하는 신경세포들은 놀라울 정도로 예측 가능한 순서대로 만들어진다. 이 순서는 생쥐, 쥐, 개, 고양이, 말, 개미핥기, 인간, 그리고 지금까지 연구한 모든 종류의 포유류 동물에게서 똑같이 발견된다. 그리고 유전학적 증거들은 이러한 순서가 파충류와 조류, 그리고 일부 어류에게도 나타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그렇다. 과학적 지식에 따르는 한 당신은 다른 물고기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칠성장어와 똑같은 뇌 제조계획을 갖고 있다.

그토록 많은 척추동물의 뇌가 같은 순서로 발달한다면 왜 이 뇌들은 제각각 달라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만들어지는 프로세스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종별로 각 단계를 지속하는 기간이 짧거나 길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구성요소들은 똑같다. 차이가 나는 것은 오직 시간이다. 예를 들어 대뇌피질을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이 만들어지는 단계는 인간보다 설치류가 ᄍᆞᆲ고, 도마뱀은 이보다 훨씬 더 짧다. 그래서 우리의 대뇌피질은 크고 생쥐의 것은 작으며, 이구아나의 것은 훨씬 더 작거나 없는 것이다.

(...)

그래서 인간의 뇌에 새로운 부분이란 없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다른 포유류의 뇌에도 들어 있으며, 다른 척추동물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발견으로 삼위일체의 뇌 가설의 진화적 토대는 흔들린다.(46-47p)

 

 

커다란 뇌에 비례해서 커다란 대뇌피질을 갖고 있다는 것은 특별할 게 없다. 사실상 이것이 정확히 우리 인간이 가진 것이다. 모든 포유류는 신체 크기에 비해 비교적 커다란 뇌를 가졌으며, 대뇌피질 역시 뇌에 비해 비교적 커다랗다. 우리의 대뇌피질은 상대적으로 뇌가 작은 원숭이, 침팬지, 그리고 다양한 육식동물에게서 발견되는 상대적으로 작은 대뇌피질의 확대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

서구의 과학자와 지식인들은 ‘커다랗고 이성적인 대뇌피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는 오랜 세월 동안 그 개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렇다. 진화과정에서 뇌의 발달 단계 중 어떤 것은 더 길게, 어떤 것은 더 짧게 지속되도록 특정 유전자들이 변형되었으며, 이것이 뇌 안에서 상대적으로 크거나 작은 부분들을 만들어낸다.(48-49p)

 

 

우리의 뇌 네트워크는 항상 켜져 있다. 신경세포들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외부세계의 뭔가가 자신들을 켜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모든 신경세포는 배선을 통해 서로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그들의 의사소통이 외부세계나 당신의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더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는 있지만, 이 의사소통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62p)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한 신경세포가 다른 기능들이 아닌 특정 기능에 더 기여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신경세포도 하나의 심리적 기능만 갖지는 않는다. 심지어 과학자들이 ‘시각피질’ 또는 ‘언어 네트워크’와 같이 그 기능을 따서 뇌 일부분에 이름 붙인다 하더라도 그 이름은 뇌의 해당 부분이 수행하는 어떤 독점적인 업무가 아니라 그때 그 과학자가 주목하는 것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지금 모든 신경세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공항이 비행기를 띄우고 항공권을 판매하고 형편없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신경세포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서로 다른 신경세포들의 집단이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한번 핸드폰이든 초콜릿이든 당신 앞에 있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어보라. 손을 거두었다가 아까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손을 뻗어보라. 이처럼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간단한 동작도 한 번 할 때마다 다른 신경세포들의 조합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축중’이라 한다.(68-69p)

 

 

뇌에 관한 한 본성이냐 양육이냐 같은 단순한 구분이 유혹적일 수는 있겠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양육이 필요한 본성’을 지녔다. 우리의 유전자가 완성된 뇌를 만들어내려면 적절한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 곧 적소가 필요하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수면시간을 일정하게 설정해주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양육자들로 채워진 적소가 필요하다.(98p)

 

 

이러한 순간에 당신의 뇌는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예측능력을 사용했고, 당신은 뭔가를 자신이 직접 했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에 좀 더 자제력을 발휘했다면 행동을 바꿀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에도 책임이 있는 것일까? 물론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

행동을 개시하는 예측들은 난데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 손톱을 물어뜯지 않았다면 지금 물어뜯는 일도 없을 것이다. 친구에게 던진 후회막심한 말들을 아예 배운적이 없다면 지금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콤달콤한 맛에 길들여지지 않았더라면 트위즐러를 그렇게 먹어치우지 않았을 것이다. 뇌는 과거 경험을 사용해 당신의 행동을 예측하고 준비한다. 마법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오늘 당신의 뇌는 다르게 예측할 것이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세상을 다르게 경험할 것이다.

물론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조금 수고를 들이면 앞으로 뇌가 예측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고 새로운 활동을 시도해볼 수 있다. 오늘 배우는 모든 것은 내일을 다르게 예측하도록 뇌에 씨를 뿌려줄 것이다.(117-118p)

 

이 부분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흔히 습관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볼만 함.

 

 

연구에 따르면 모욕과 위협을 지속적으로 받은 사람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커진다. 과학자들이 아직 이런 일들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낱낱이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하다.(136p)

 

 

비록 변이가 표준이고 또 우리 종에게 축복이라 할지라도, 변이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의 마음에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난다는 생각보다는 하나의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있다는 생각이 훨씬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서로 종류가 다른 마음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변이를 특정한 범주로 나누어 다루려고 애쓴다. 그들은 깔끔한 작은 상자들에 이름표를 붙이고는 사람들을 분류해 넣는다.

(...)

당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서 당신을 작은 상자들에 배정하는 성격 검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좋은 예로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BTI)를 보자. MBTI는 서로 다른 성격 유형으로 분류한 작은 상자 16개에 사람들을 나누어 넣는데, 이를 파악하면 사회생활에서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인다. 안타깝게도 MBTI의 과학적 타당성은 매우 의심스럽다. 이 검사를 비롯해 이와 유사한 성격 검사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의 실제 행동은 이 대답과 거의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MBTI보다 적은 네 개의 상자만 갖고 있고 훨씬 더 엄밀한 ‘호그와트 기숙사 배정 검사’를 선호한다(참고로 나는 ‘래번클로’다).(151-152p)

 

ㅋㅋㅋㅋㅋ

 

 

인간의 뇌는 자신을 오해하고 사회적 현실을 물리적 현실로 착각해 온갖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모든 동물 종처럼 엄청나게 다양하다. 하지만 동물 왕국의 다른 부분들과 달리 우리는 이 변이들을 인종, 성별, 국적처럼 작은 상자들에 이름표를 붙여 정리해 넣는다. 이러한 이름표가 붙은 상자들은 사실상 우리가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취급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를테면 ‘인종’이라는 개념에는 종종 피부색과 같은 신체적 특성들이 포함된다. 하지만 피부색이라는 요소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연속체이며, 색조 한 세트와 다른 세트 사이의 경계는 한 사회의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된다. 어떤 이들은 유전학에 호소해 그 경계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피부색이 유전자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눈 색깔, 귀 크기, 발톱의 곡률 또한 마찬가지다.(178p)

 

 

ㅡ 리사 펠드먼 배럿,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中, 더 퀘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