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5
“약한 증거는 더 강한 증거를 결코 이길 수 없다”라는 것이다.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보다 늘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만한 근거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다. 기적을 옹호하는 증거가 믿음을 줄 만큼 강력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흄이 내세운 반론의 핵심은 “기적이 자연법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을 기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비행기에서 추락해 죽을 상황인데, 기이한 돌풍이 불고 아주 푹신한 곳에 떨어져서 그가 살아남았다면 이는 놀라운 행운이지만 기적은 아니다. 반면 비행기에서 추락한 사람이 날아오른다면 그것은 기적일 수 있다. 흄의 반론에 따르면, 인간은 경험상 자연법칙에 늘 예외가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법칙이 통하지 않았다는 주장, 즉 기적이 일어났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는 “경험을 통해 나온 다른 모든 주장만큼 완벽하고 흠이 없다.” 우리의 일관된 경험에 따르면, 중력은 늘 효력을 발휘하고, 열은 늘 얼음을 녹이며, 죽은 자는 부활할 수 없다. 기적을 반박하는 증거는 도처에 있다. 일관된 경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의 존재를 반박하는 증거로 손색이 없다. 기적이 일어났다는 증거는 절대로 강력할 수 없다. 기적은 늘 한 사람이나 소수의 증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마련이고, 그러한 증언은 자연의 일관성에 대한 가정을 뒤흔들 만큼의 신빙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증도 마찬가지다. 좋은 논증의 전형적인 특징은 규정할 수 있지만, 어떤 논증이 통하고 통하지 않는지를 확정해주는 완벽한 규칙이란 없다. 특정 논증의 타당성을 알아보는 방법은 그것을 다른 논증들과 비교해 검증하는 것이다. 흄이 지식인들과의 우정을 중시하고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귀하게 여겼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라플레슈의 예수회대학 교정을 거닐면서 수도사들과 나눈 대화는 흄이 자신의 논증을 검증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논증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 최상의 논증은 그저 더 우월한 경쟁 상대를 찾지 못한 논증일 뿐이다.
의지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몸을 다르게 움직이거나 뭔가를 새로 지각한다고 할 때 우리가 느끼고 의식하는 내적인 인상 그 이상은 아니다. — 데이비드 흄, 『인성론』 중
흄은 자유의지에 관한 우리의 무분별한 생각의 원인 중 하나가 “자발적 자유”와 “무차별적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발적 자유는 행위자가 강요 없이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반면 무차별적 자유는 인과의 필연성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무차별적 자유는 불가능하다. 인간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유는 자발적 자유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유일한 자유는 “의지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힘이다. 가령 내가 움직이지 않은 채 계속 있기로 결정한다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움직이고자 하면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죄수거나 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자유는 보편적으로 모든 이에게 허용된다.”
ㅡ 줄리언 바지니, <데이비드 흄> 中,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