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30
나쁘지는 않았는데 저자가 예전에 기고했던 아래의 글만 읽었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이 책은 안 읽어도 저 글은 모두가 읽어보면 좋겠다.
어른 되기, 나아가 ‘해야 할 일’ 목록을 완료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현대 세상에서 사는 일이 그 어떤 시대보다도 쉬운 동시에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해서다. 이 틀을 통해 보니 내가 ‘해야 할 일’ 목록에 붙박아 놓은 일들을 기피해 왔던 이유가 뚜렷해졌다. 우리에겐 매일 해야만 하는 일들의 목록이,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가 제일 먼저 할당되어야 하는 영역이 있다. 정신적 에너지는 유한하다. 아닌 척하려고 애쓰다 보면, 그때 번아웃이 찾아온다.(17p)
문제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흘러내리는 모래 위에 견고한 토대를 지으려 애쓰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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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워라밸’을 잘 잡고 있다는 분위기도 함께 풍겨야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대단히 세심한 어머니여야 하되,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선 안 된다. 남자들은 아내와 동등한 반려 관계로 지내면서도, 남성성을 유지해야 한다. SNS에서 자기 브랜드를 구축해야 하지만, 삶을 진정성 있게 꾸려나가야 한다. 숨 가쁘게 터져 나오는 뉴스들을 시시각각 알고 의견을 표해야 하지만, 뉴스에서 다루는 현실이 앞서 말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도 저해하게끔 놔두어선 안 된다.
우리는 사회적 지원이나 안정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일을 전부 해내려고 아등바등한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는 번아웃 세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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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로부터 ‘경이’라고 불러 마땅한 것들을 선사받았음에도, 우리에겐 잠재력이 막혀버렸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투한다.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밀레니얼에게 번아웃은 밑바탕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길러졌는지,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상호작용했고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지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은 번아웃이다. 번아웃은 우리를 둘러싼 기온과도 같다.(26-28p)
부머가 나이 먹고 쿨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날이 갈수록 나이 먹고 쿨하지 못해지는 건 모든 세대가 똑같다. 하지만 현재 밀레니얼에게 부머는 점점 더 위선적이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며, 자신들이 얼마나 쉽게 모든 걸 손에 넣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는 세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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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이런 반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부머들에게서 온 허다한 이메일을 읽고 나니 분노에 더욱 불이 붙었다. 그러나 미국 중산층의 대확장에 기여한 흐름들에 대해 더 많은 자료를 찾아 읽고 나니 입장이 조금 달라졌다. 베이비붐 세대 전체가 전례 없는 경제적 안정기에 성장하긴 했으나, 그들의 성년기는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이 여러 압박들로 얼룩져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 역시 그들이 부모 세대에게 싸잡아 조롱 받았고, 특히 특출난 권리 인식을 지닌 듯 보였다. 또한 부모들은 삶에 뚜렷한 목적이 없다고 사회로부터 경멸받았다. 중산층 자리를 유지하려는 (혹은 차지하려는) 능력을 두고 공황에 빠지기도 했다.
부머들은 불안했고, 과로했으며, 자신들을 겨냥한 비판에 대해 마음 깊이 분노했다. 그럼에도 부머들은 너그럽게 여기기가 어려운 것은,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도 우리 세대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불안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가 밀레니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80~90년대 베이비붐 세대의 정신은 우리 유년기의 배경에 스며들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품었던 기대들의 토대에도 녹아들었고, 그 미래를 쟁취하기 위한 로드맵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우리를 만든 베이비붐 세대가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번아웃에 빠졌는지 이해해야 한다.(39-41p)
엄마의 잘못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의 경제적 불안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나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라는 결심을 굳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이별로 인해 커리어와 재정적 안녕이 위태로워지게 두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그런 적이 없다. 대학원에 가고 싶을 때 대학원에 갔다. 결혼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나는 계속 일하는 것이야말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패닉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이런 대응기제는 겉보기엔 논리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밀레니얼이 증언할 수 있듯, 건강한 대응기제이거나 감당할 수 있는 대응기제이긴 어렵다.(97p)
좋아할 수 있는 직업은 사람들이 무척 탐을 내기에, 그만큼 지속 불가능하다. 너무나 적은 자리를 두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보상 기준이 점차 낮아져도 별다른 여파가 없다. 당신만큼 열정을 불태우며 당신의 자리를 대체할만한 누군가가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복지를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도 된다. 연봉을 입에 겨우 풀칠한 수준으로 낮춰도 된다. 특히 예술계라면 더 문제없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 작가에게 돈을 주는 대신, 역으로 작가가 웹사이트에 이름을 올릴 기회를 얻기 위해 무급으로 노동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으로 고용주들은 구직자의 최소 자격 조건을 상향시킨다. 업무에 필요한 조건인지는 상관없다. 더 높은 학력, 더 많은 학위, 더 많은 훈련을 지닌 자만이 후보에 오를 수 있다.
그리하여 ‘멋진’ 직업 및 인턴십은 수요-공급의 법칙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직업 자체가 근본적으로 보람이 없거나, 알량한 보수에 비해 너무 많은 노동을 요구해 있던 열정도 사그라지게 만든대도,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그 일을 해낼 사람으로 어렵게 뽑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일자리를 더더욱 열망의 대상으로 만든다.(135-136p)
‘좋아하는 일을 해라’ 윤리에 대한 자라나는 밀레니얼들의 환멸과, 매력 없는 일에 대한 꾸준한 수요 증가가 합쳐져 이런 직업들은 새로운 종류의 광채를 얻고 있다. 나는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 사이에서 직업의 조건과 야망에 관한 “개종”의 순간이 퍼져나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더 이상 꿈의 직업을 원하지 않는다. 보수가 너무 적지 않고, 과로하지 않아도 되고, 죄책감을 주입해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지 않으면 된다. 어쨌거나, 그들은 모두 좋아하는 일을 하려다가 번아웃에 빠져 하나의 잿더미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들은 이제 그냥 일을 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일과 맺은 관계를 재설정하고 있다.(159-160p)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열심히 일한 끝에 큰 행운이 따랐고, 나는 임시적 안정에 다다랐다. 일자리가, 사생활이, 연애 관계가 안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많이 읽고 많이 관찰했기에 내가 처한 시나리오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안정이 물거품이 되리라는 걸 안다.
정말 분명하게 말해두고 싶다. 아이들 자체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은 훌륭하다. 부모들에게 번아웃에 대해 물을 때, 나는 그들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반드시 물었고, 돌아온 답변들은 매우 숭고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구조로 인해ㅡ학교와 일 그리고 젠더가 그 둘과 교차하는 방식으로 인해ㅡ아이들은 소형 폭탄이 되어 버렸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 자체보다는, 아이들에게 수반되는 기대와 재정적 현실, 노동의 현주소가 폭탄이 되었다.(373p)
ㅡ 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中, 알에이치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