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1
1990년대에 캐나다에서 통계학을 공부하던 알라나는 아직 성경험이 없고 외로우며 섹스 파트너나 애인을 찾지 못하는 모든 남녀를 위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플랫폼에 ‘알라나의 비자발적 독신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이름은 곧 인셀incel이라는 약어로 축약되었다. 자존감이 낮은 외로운 개인들에게 자신감과 위로를 전하자는 선의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셀은 20년이 조금 안돼서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해버렸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이 커뮤니티는 여성을 매력적인 ‘스테이시’와 덜 매력적인 ‘베키’로 나누고 남성을 매우 남자다운 ‘알파메일’과 남성성이 약한 ‘제타메일’, 또는 ‘소이보이’로 나누고 시작했다. 처음에 알라나는 ‘러브 샤이’와 ‘에프에이FA’ 같은 용어를 사용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비인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언어가 더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제 여성은 ‘여성’과 ‘휴머노이드’를 합쳐서 만든 ‘피모이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긍정적인 의도에서 시작된 알라나의 자기 계발 커뮤니티는 사실상 여성을 증오하고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외로운 개인들의 위험한 에코체임버로 변했다.(87p)
다른 온라인 상담 게시판과 달리 본인이 겪는 문제의 조언을 구하려고 레드필 커뮤니티를 방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르게 된다. 이들은 점차 세뇌되어 코치와 다른 회원들이 규범과 이념을 내면화한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체성과 태도, 행동의 변화는 이러한 온라인 사회화 기구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트래드와이브즈에서의 경험을 통해 정반대의 이념 성향도 극단주의자들이 조종 전략을 확실히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의 이념 성향은 트래드와이브즈의 성향과 이보다 다를 수는 없을 만큼 달랐다. 그러나 그런 나도 이들의 강력한 집단 역동에 거의 말려들 뻔했다. 나는 극단주의자에게 뚜렷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계급이나 젠더, 인종, 정치적·종교적 견해는 그 사람이 극단주의자에게 길들여질지 아닐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약해진 시기에는 모두가 극단주의자에게 이용당할 수 있으며 취약함은 상당히 일시적인 개념일 수 있다.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패는 바로 정보다. 우울과 공황 발작 같은 다른 무의식적 과정과 마찬가지로 각 단계와 약한 부분, 사고의 왜곡을 인지하는 것은 머릿속에서 시작된 인지적 악순환을 끊는 데 매우 중요한 도구다. 결국 내가 트래드와이브즈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레드필위민 게시판에 들어가기 전에 급진화의 단계와 징후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98-99p)
2017년 여름 이후 이슬람국가는 지하드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정책을 크게 바꾸었다. 이제 이슬람국가는 여성을 무하지랏(여성 이민자)으로 보지 않고 무자히닷(여성 전사)으로 인정한다. 처음에 여성 전투원에 반대했던 <루미야>는 2017년 7월 호에서 여성들에게 우후드 전투에서 선지자 무함마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던 움 아마라의 선례를 따르라고 권고했다. 2017년 10월 이슬람국가는 여성의 지하드 참여가 의무라고 공식 선언하기까지 했다. 전례 없는 조치였다.
지하드가 더는 물리적 폭력의 형태를 띨 필요가 없다는 사실 덕분에 여성들은 가상의 전선에서 온라인 회원 모집과 미인계, 심지어 해킹 같은 핵심 임무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
온라인 에코체임버의 등장은 극단주의 운동이 신입 회원을 세뇌시키고 집단 의존성을 강화하고 집단 가치를 내면화시키는 방식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정체성이나 불안과 관련된, 극도로 개인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조언하는 플랫폼들은 유해한 이념으로 향하는 흔한 관문이다. 레드필위민처럼 공공연하게 연애 관계에 대해 조언하는 게시판과 ‘테러를 실행하는 자매들’처럼 비밀리에 여성에게 상담을 제공하는 채팅방은 모두 극단주의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문턱 낮은 입구 역할을 한다. 개인의 성생활과 연애 생활보다 더 사적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러한 장소들은 신입 회원을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친밀한 내집단 관계를 형성하고 신입의 정체성을 다른 회원의 정체성과 결부시킴으로써 강력한 잠금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 목표는 신입 회원이 집단에 감정적으로 얽매이게 함으로써 그곳을 나가는 것을 최대한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115-117p)
대략 온라인 사용자의 40퍼센트가 가볍거나 심각한 온라인 괴롭힘을 당했으며 70퍼센트 이상이 괴롭힘을 목격했다. 뉴스 기사의 댓글창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혐오 표현이 디지털 시대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환상에 굴복하기 쉽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어디에서나 보이는 혐오는 현실을 심각하게 호도한다. 많은 경우 혐오 콘텐츠를 퍼뜨리는 것은 일반적인 온라인 사용자가 아니며 극단주의 비주류인 극우가 뉴스 기사의 혐오 댓글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실제로 아주 적은 소수가 대부분의 온라인 혐오 표현을 생산한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ichbinhier(이히빈히어)와 함께한 연구에서 전략대화연구소는 모든 활성화 계정의 5퍼센트가 페이스북의 독일 뉴스 기사 댓글란에 있는 혐오 댓글의 ‘좋아요’ 중 50퍼센트 이상을 눌렀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이 페이스북 사용자 수백만 명의 머릿속에서 현실을 왜곡하고 온라인 담론에 영향을 미치며 정치인과 언론인에게 압박을 가한다.(166p)
ㅡ 율리아 에브너, <한낮의 어둠> 中,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