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4

 

내 선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제공한 판결과, 판결이 언도된 순간부터의 가차 없는 전개 과정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해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러한 결정의 진지성을 많이 깎아 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 대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심각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121~122p)

 

 

알베르 카뮈, <이방인>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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