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

 

다른 아이스크림은 다 먹어봤는데, 아이스팜 자두맛은 대충 예상이 되는 맛이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오늘 아이스크림 사러 가야지.

 

 

 

젤라토는 맛있었다.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놀랍도록 절묘해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때마다 기품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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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랄까, 분명 맛있었지만 그게 아이스크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젤라토와 아이스크림은 다르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얼린 주스도, 냉동 블루베리를 섞은 요거트도 아이스크림으로 치는 관대한 입맛을 가진 사람이니까. 다만 그건 너무 대단했다. 너무 맛있고, 너무 비싸고, 너무 귀했다. 한 번 맛보기 위해 지도를 보고 찾아가 줄을 서고,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떠올리며 야금야금 아껴 먹어야 한다면 그건 내게 더 이상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아무리 아이스크림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저 고급 디저트쯤으로 기억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약간은 하찮은 음식이다.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기쁘고 맛있고 소중하지만 결코 중요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주머니가 가벼울 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크게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나는 비로소 만족한다.(11-12p)

 

 

이 영화를 처음 봤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사람들’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집이 없어 매일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 책임지지 못할 아이를 낳는 사람들, 일하지 않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고래고래 소리부터 지르는 사람들. 하지만 직접 집을 구해보니 알 것 같았다. 평범한 삶에서 발을 살짝 삐끗하면 누구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63p)

 

 

다시 맛본 피카츄 돈가스는 뭐랄까, 한없이 가짜에 가까운 맛이었다. 그걸 먹는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식집의 바삭하고 두툼한 수제 로스가스가 떠올랐다. 이제 나는 그런 걸 진짜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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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언니는 바나나가 그렇다고 했다. 어릴 때 그 귀한 걸 동생과 반씩 나눠 먹으면 혀가 녹아내릴 것처럼 맛있었는데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되니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고. 눈을 감고 안마의자에 누워 있던 희숙 언니도 덜덜거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나는 그 알록달록한 제사 젤리. 서로 더 먹겠다고 오빠들이랑 아주 피터지게 싸웠어. 여기 흉터도 그러다 생긴 거잖아. 순맛대가리 없는 게 그땐 왜 그렇게 좋았나 몰라.”

다른 듯 비슷한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걸까.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지며 나를 둘러싼 세계 역시 천천히 빛을 잃어가는 걸까.(108p)

 

 

ㅡ 하현, <아이스크림> 中,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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